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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하게 내용 정리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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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지점 ㅎㅎ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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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고 갑니다~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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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야기~ 덕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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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니 제가 되게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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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y Player One
<레디 플레이어 원>, 스필버그의 세 번째 변곡점 혹은 원점
글 송경원 2018-03-26
완성형의 스티븐 스필버그를 만나다



뒤돌아보니 스필버그만 남았다. 아니 길고 긴 시간을 지나 결국 모든 길이 스필버그로 통하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이제 스티븐 스필버그는 할리우드를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물론 할리우드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걸어왔던 여정을 몇 마디로 압축할 필요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큰 흐름이 어떤 방향을 향하는지 정도는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종국에 남는 건 속도도 세세한 행보도 아닌 거대한 방향이기 때문이다. 할리우드는 영화를 통해 어떤 꿈을 꾸나. 적어도 지금까지 내놓은 답의 총합은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이름으로 압축 중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2018)을 보며 짐작은 확신으로 굳어졌다.



성공한 덕후가 영화를 구한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대중문화의 총아다. 80, 90년대 스필버그의 가족주의적 성향을 두고 할리우드의 싸구려 감상주의로 폄하하는 이도 있었고 흥행을 위해 시네마를 파괴한다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던 건 반대로 그만큼 흥행감독으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다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스필버그에겐 몇 차례 변곡점이 찾아온다. 첫 번째는 <쥬라기 공원>(1993)이다. 당대 구현 가능한 기술의 집대성이랄 수 있는 이 영화는 상상한 것을 현실 이미지로 만든다는 스필버그 또는 할리우드의 기술적 정점에 해당하는 영화다. 두 번째는 <A.I.>(2001)다. 이 유장하고 아름다운 영화를 통해 스필버그는 자신 안에 시네마의 호흡이 자리잡고 있음을 증명했다. 대중문화의 모험자에서 영화의 순례자로 전환. 블록버스터의 상징이 할리우드 클래식 최후의 수호자로 변모한 아이러니. 하지만 실은 스필버그는 처음부터 그랬다. <E.T.>와 <환상특급>(1983)을 만들면서 <컬러 퍼플>(1985)과 <태양의 제국>(1987)을 만들던 연출가. 달라진 게 있다면 속도와 호흡이다. 대중적인 평균율에 맞추던 그의 호흡은 점차 느리고 완만해져 장면들을 꼼꼼히 탐구한다. 영화의 밀도가 급격히 올라간 것도 <A.I.>부터다. 그리고 느리게 (혹은 장중하게) 속도를 조절할 줄 알게 되자 보이지 않던 것들, 이를테면 인간의 어둠과 트라우마(<캐치 미 이프 유 캔>(2002)), 현실의 더러움(<링컨>(2012)), 공동체의 두려움(<우주전쟁>(2005)) 등이 보이기 시작했다.

극적인 변화의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단언할 순 없다. 혹자는 <후크>(1991)의 실패 이후 피터팬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게 됐다고 평가하고, 누군가는 칸국제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했던 <슈가랜드 특급>(1974)을 예로 들며 시적이면서도 친절하고 탄탄한 서사가 그의 본질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보면서 새삼 잊고 있었던 사실 하나가 떠올랐다. 다름 아닌 아이의 시선이다. 영화가 꿈을 현실로 만드는 매체라면 최적의 자리는 어린아이의 눈이다. 스티븐 스필버그로 다다르는 경로는 다양하겠지만 결국 도달하게 되는 장소는 어린아이의 상상력이다. 꿈을 현실로 만드는 원더랜드. 할리우드가 원했던 것이라 해도 좋겠다. 70년대 스필버그는 쇼크와 혁신으로 그 비전을 열었고, 80년대는 가족드라마와 보편타당한 감성의 평균점에 맞추었으며, 90년대는 기술의 힘을 빌려 구상했던 것들을 현실로 만들었다. 달리 표현하자면 80년대의 스필버그는 스스로 아이가 되고자 했고, 90년대의 스필버그는 어둠을 통해 일련의 성장통을 겪었으며 2000년대의 스필버그는 이제 아이였던 시절을 회상한다. 뒤돌아보는 자가 상상한 세계. 스필버그의 원더랜드는 이제 일종의 회고담처럼 보인다. 다만 그 회고담을 최적의 현재진행형의 형태로 포장하는 것이 스필버그가 도약을 멈추지 않는 비결이다.



어니스트 클라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레디 플레이어 원>은 80년대 대중문화의 향수를 응축시킨 영화다. 2045년, 경제 붕괴로 인해 암울해진 미래 사람들은 가상현실 게임 오아시스(OASIS)에서 위안을 얻는다. 뭐든지 할 수 있는 오아시스를 창조한 천재 개발자 제임스 할리데이(마크 라일런스)는 게임 속에 숨겨진 3가지 미션을 달성하고 우승하는 사람에게 오아시스의 소유권과 막대한 유산을 상속할 것이라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모험을 꿈꾸던 사람들은 열광했지만 동시에 부작용도 발생했다. 거대 기업 IOI가 막대한 자본과 노동력을 바탕으로 경쟁에 뛰어든 것이다.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 있는 빈민가 이모의 트레일러에 더부살이를 하던 소년 웨이드 와츠(타이 셰리던)는 성배의 기사 퍼시발이란 아이디로 활약 중인 유명 플레이어다.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그는 80년대 대중문화와 제임스 할리데이에 흠뻑 빠진 진정한 게이머다. 제임스 할리데이의 인생에 녹아든 80년대 문화들을 분석해 나가던 웨이드는 모두가 놓친 힌트를 발견하고 첫 번째 미션을 해결한다. 이후 웨이드의 동료들과 이를 방해하려는 IOI의 본격적인 대결이 펼쳐진다.

스필버그가 이 이야기에 끌린 건 너무 당연해 보인다. 게임을 중심축으로 하고 있지만 <레디 플레이어 원>의 핵심은 게임 속 이스터에그로 숨겨져 있는 80년대 대중문화다. 게임 속 가상세계에 대한 애정 없이 착취와 돈벌이 수단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IOI 사장을 향해 “속으로는 대중문화를 비웃고 있잖아!”라고 일갈을 날리는 웨이드의 모습은 스필버그의 내심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고 즐겼던 대중문화, 그 자체를 사랑하고 존중받길 바랐던 스필버그의 바람과 달리 당대 스필버그에 대한 평가에는 다소의 조롱과 가치 폄하가 담겨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성공한 덕후가 시도할 수 있는 최상의 덕질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다만 쿠엔틴 타란티노나 기예르모 델 토로 등 B무비의 쾌감을 대중문화 중심으로 끌고들어온 것과는 다소 결이 다르다. 당대 대중문화의 정수들을 한껏 탐닉하되 이를 구성하고 포장하는 방식은 철저히 안전한 고전 할리우드 드라마를 따르기 때문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에는 최신 게임의 캐릭터, 다수의 아이콘이 등장하지만 그건 흥미를 돋우는 양념 정도의 기능에 그친다. VR, 3D 등 현란한 시각효과로 장식된 듯 보여도 기술을 한겹 벗기고 보면 <구니스>나 <E.T.> 혹은 의 감성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어쩌면 이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황금률이 어디까지나 소년의 시선에 맞춰져 있음을 고백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스필버그가 서 있는 위치가 바뀐 만큼 고개를 돌려 그 시절을 되돌아보는 향수에 가까운 작업이지만 이것을 다시금 현재화하고야 만다.




대립항의 합으로서의 스티븐 스필버그
2000년 이후의 스필버그의 행보는 얼핏 자기 분열적으로 보인다. 한쪽에는 대중문화의 첨병으로서 기술을 자랑하며 이야기를 쉽고 친절하게 전달하는 블록버스터 감독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이제는 스크린에서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할리우드 고전영화들의 우아한 속도에 도취된 장인이 있다. 스필버그가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를 만들고 <뮌헨>(2005)을 선보였을 때 사람들은 그 거리감에 당황했다. 동시에 전장 한복판에서도 가족주의를 신봉하던(<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 감독이 어느새 미국 중산층의 해체와 공포를 적나라하게 드러낼 때 일단의 평론가들은 낯선 가운데에서도 환호했다(<우주전쟁>). 게다가 그는 동시대 인정받던 여타 감독들이 그 자리에 머무른 채 도돌이표를 찍는 사이 홀로 유유히 도약하지 않았던가. 최대 다수의 대중을 만족시킬 줄 아는 빼어난 감각의 장사꾼인 동시에 묵직한 걸음으로 시대를 조망하는 작가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유일하다. 대중과 예술, 좁힐 수 없는 간극이라고 여겼기에 모순된 요소들의 총합을 그저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고유명사로 이해하고 넘어간 게 사실이다. 이 시점에 다시금 좋아하는 것을 만끽하는 쪽으로 돌아간 <레디 플레이어 원>은 일견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흔적들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하나로 묶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늠자처럼 보인다.

지금의 스필버그를 이해하기 위해선 할리우드의 맥락부터 간략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2015년 87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오프닝 공연은 여러 가지로 의미심장했다. 뮤지컬 형식으로 진행된 닐 패트릭의 공연은 21세기를 맞이한 할리우드의 고민과 해답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 모든 건 다 무빙 픽처 덕분이죠. 그림자와 속임수, 눈앞에서 벌어지는 마술쇼 같죠. 우린 왜 영화를 사랑할까요. 영화는 다 허구인데 말이죠. (중략) 스크린의 수많은 픽셀들. 영화는 허구일지 몰라도 인생의 진짜 의미를 보여주죠. 한장의 이미지보다 더, 한명의 유명인보다 진심으로 영화는 우리가 누구인지 보여줍니다.” 허구의 이야기와 가상의 이미지를 조각해 도달하는 즐거움 혹은 진심. 할리우드가 영화를 통해 추구한 궁극의 목표는 바로 거기 있다.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왜 필름(Film)이나 무비(Movie)가 아니라 무빙 픽처(Moving Pictures)인가 하는 점이다. 나는 그것이야말로 21세기의 할리우드가 영화에 대해 내놓은 답이라고 생각한다. 여기 두 가지 흐름이 있다. 필름에 빛을 찍어낸 물질로서의 영화와 움직이는 이미지, 다시 말해 환영으로서의 영화다. 하나는 그것이 거기에 있었다는 현실의 지표이자 리얼리즘의 형식으로서의 영화, 사실주의의 영화들이다. 다른 하나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도구로서 무엇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담아낼 수 있다고 믿는 영화들, 표현주의에 속하는 영화들이다. 물론 두 가지 사이(혹은 바깥)에는 무수한 영화들이 놓여 있지만 큰 줄기로 보자면 영화를 떠받치는 가장 거대한 두개의 기둥임에 분명하다. 할리우드는 시작부터 표현주의를 표방해왔다.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안을 궁리하며 숱한 문법들을 창조해온 것이다. 이 시점에 무빙 픽처, 움직이는 그림이라는 선언은 영화의 경계를 한겹 확장시키려는 시도로 읽힌다. 필름, 질료, 고전적인 영화문법에 얽매이지 않고 본질로 돌아가겠다는 선언. 중요한 건 환영을 어떻게 현실처럼 느끼게 할 것인가의 문제다. 방식은 중요치 않다. 굳이 필름이 아니라도 좋다. 필름시대에 체득한 연출문법을 활용할 수도 있고 CG, 게임 등 다른 매체로부터 특징을 일부 흡수해올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움직이는 그림’으로 진심을 움직일 허구를 창조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허구가 진실 이상의 힘을 보유하고 있다는 믿음이다.



리얼리티 이즈 리얼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모든 경계를 허무는 과정이 그와 같다. 2000년 이후 그의 행보는 좁혀지지 않는 평행우주를 넘나드는 것처럼 보였다. 가족용 오락영화와 클래식한 시대극, 상상의 극단인 SF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스필버그의 필모그래피는 자기 안에서 대립한다. 마치 사실주의와 표현주의처럼 따로 계보를 짤 수밖에 없는 두 기둥이 한 사람의 창작력 안에서 뽑아져나오는 모순. <레디 플레이어 원>은 겹쳐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속성이 어떻게 하나의 우물에서 뿜어져나올 수 있었는지를 증명한다.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가상현실인 오아시스와 트레일러 빈민촌을 중심으로 한 현실세계가 대략 6:4 정도의 분량으로 펼쳐진다. 현실과 가상의 공간을 구축하고 있지만 실상 영화 속 모든 공간은 실제 지역성이 지워진 일종의 무대에 가깝다. 오하이오주 콜럼버스나 IOI 회사는 미래라는 시점을 제공할 뿐 복합한 정체성이나 역사를 보여주지 않는다. 특히 공간 디자인마저 포화상태에 이른 인구밀집도를 반영하여 위로만 확장되고 포개어져 있는 상태다. 반면 가상공간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계로 무한히 펼쳐져 있다. 얼핏 가상이 실재 같고 실재가 가짜 같은 공간 구성. 하지만 스필버그는 진짜같이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오아시스의 공간은 매우 사실적으로 구현되어 있지만 아바타들의 디자인은 어디까지나 인공적인 느낌을 지우지 않는다. 단지 실재와 가상을 구분하기 위한 장치라고 여기면 단순하겠지만 지금의 CG 기술은 그 경계를 지우기 충분한 수준에 와 있다. 스필버그가 여기서 일부러 다시금 가상을 환기시키는 건 게임의 본질을 환기시키기 위해서라고 믿는다. 게임의 그래픽을 높여서 시각적 쾌감의 극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 플레이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시스템, 이른바 ‘게임성’의 복귀다.

게임은 재밌어야 한다. 게임 스토리텔링은 긴 체험 시간을 목적으로 이 감각을 달성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다. 그래픽, 사운드 등 기술적인 구현은 그 일부 요소일 뿐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의 세 가지 미션이 점점 예전 게임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스필버그는 게임의 본질, 영화의 본질, 즐거움의 본질에 집중한다. 아마도 최근 스필버그의 호흡이 유달리 유장하고 우아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그가 새로운 호흡을 익혔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그 호흡이 자신이 믿는 영화적 진실을 알리는 데 가장 적절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리라. 이야기에 휩쓸리지 않고 잠시 느리게 걷는 사이 새겨지는 표정과 스며드는 진실들. 스필버그의 실화영화에서 고전 할리우드영화의 향수가 느껴지는 건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이야기에 가장 적절한 속도를 찾아낸 결과물이다. 재미있는 게임이 게임성에 집중하는 것처럼 스필버그는 영화적인 것에 집중하는 중이다. 그리하여 기술을 자랑하지 않고 현실인 척 모방하지도 않으며 눈앞에 있는 영화 그 자체를 즐기도록 문을 열어둔다.



현재 할리우드가 선택한 길은 필름도, 디지털도 아닌 ‘무빙 픽처’다. 한때 할리우드는 리얼리티를 리얼로 만들기 위해 소모적인 방식으로 기술을 갈고닦아왔다. 환상의 힘이 현실을 압도하고 보는 이가 허구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마술은 성공 직전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엔 넘어설 수 없는 마지막 장벽이 있다. 영화는 극장을 벗어나는 순간 깨어나는 약속된 오락이라는 사실. 말하자면 무엇을 하건 영화는 영화다. 반대로 극장을 벗어나는 순간 그것은 더이상 영화가 아니다.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웨이드는 모험의 끝에서 동경하던 할리데이를 만난 뒤 깨닫는다. “리얼리티 이즈 리얼.” 가상의 리얼리티는 현실에 대한 모방이나 흉내와는 다르다. 현실을 압도하고자 욕망하는 대립적인 관계도 아니다. 리얼리티 역시 어엿한 또 하나의 사실이라는 단순 명료한 체감. 그 사실을 자각하고 인정할 때 우리는(영화로 대표되는) 가상의 환영을 순수하게 즐길 수 있다.

다시, 스필버그의 근간은 무엇인가. 어떻게든 즐거움을 발견하고야 마는 아이의 시선으로 지금 이 자리에 놓인 것을 즐기는 것이다. 허무할 정도로 단순 명쾌한 답변. 역사를 현재화하고(<더 포스트>(2017)), 지금 이 자리의 현실정치를 투영하며(<링컨>), 즐거운 환상을 직접 눈으로 만끽하고자 하는 고집(<레디 플레이어 원>). 즐거움의 현재화라고 할까. 그것을 위해서라면 손안에 쥔 활용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사용하는 데 망설임이 없다. 게다가 서사의 조율에 관한 한 스필버그는 최상의 기능인이 아닌가. <레디 플레이어 원>이 새로운 장을 개척하는 영화는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를 본다는 즐거움을 이만큼 제대로 환기시키는 영화도 드물 것이다. 마치 최신 그래픽으로 리메이크한 고전 명작 게임을 플레이하는 기분, 심지어 초월 이식됐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다. 80년대 대중문화를 만끽했던 사람은 향수에 젖어, 처음 접한다면 익숙한 스토리라인을 따라, 게이머라면 이스터에그를 찾는 재미와 함께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면 족하다. 어떤 구태의연한 의미도 부여하지 않고 오직 영화를 본다는 (만든다는) 행위, 그 즐거움에 몰두하는 <레디 플레이어 원>은 <A.I.> 이후 스필버그의 세 번째 변곡점, 아니 원점이라 할 만하다.

by 힌토끼 | 2018/04/17 01:02 | 그림책 | 트랙백 | 덧글(0)
그림책에서 글이 잘 하는 것



그림책에서 글이 할 수 있는 일:

1. 소리
crunch crunch -소리는 순식간에 나의 경험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 눈이 뽀드득 뽀드득 밟히는 소리.

2. 그림과 함께
글은 "이렇게 like this" 라고말할 뿐- 그림과 함께 보여주는 글.





제본선을 폴짝 건너 뛴 느낌이 있다. 폴짝 뛰면서 발을 바꿨다. 절묘하고 경쾌한 리듬이 느껴진다.
by 힌토끼 | 2018/04/10 22:44 | 그림책 | 트랙백 | 덧글(0)
알게 되면 쓰라
..."형제님." 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냥 '사랑'하시게. 모든 것을 사랑하란 말이네."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를 확인 하려는 듯, 그는 다시 한번 식탁을 내려쳤다. 그러다가 자기 자리에서 등을 뒤로 기대면서, 그는 새로운 미소를 지어보였는데. 그 미소란 흔히 뒤틀린 미소라고 부를 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형제님이 말하는 내용이 뭔지 확실히 알도록 하시게" <너는 특별하지 않아> p474

미국에 와서 조용히 지내니 머릿속이 더 바빠지는 효과가 있다. 한국에선 이래 저래 해결해야할 일도 많고 안 할 수 없는 일도 많고...몸이 바빠 억눌러 두었던 것들이 이제 스물스물 고개를 드는 것이다.

안 그래도 짧지 않았던 "하고 싶었던" 책 목록이 더 길어졌다. 계속 지지부진 하다가 엊그제 드디어 스스로 견디지 못하고 나의 매니저에게 좌르륵 풀어놓았다.

와인 한 잔에 잔뜩 들떠서 뭔가 그럴 듯 하게 꿀을 발라(!) 앞에 늘어놓았는데,
매니저가 어쨌든 다 쳐내고 순서를 정해주었다. 이거 먼저 하면 되겠네.

어떤 것들은 오래 묵혀야 이제야 정말 내 것 처럼 느껴져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되는 것 같다. 지금 생각으론 이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다 빨리 눈앞에 보이게 타타탁 만들어내고 싶은데. 분명히 설익은 것들은 가다가 탁. 멈추어 설 것이다.

다시 한번 식탁을 내려치자. 그리고 내가 말하는 내용이 뭔지 확실히 알도록 하자꾸나.


by 힌토끼 | 2018/04/10 22:33 | 그림책 | 트랙백 | 덧글(2)
볼로냐 2018-3: the NYT Award conference
Celebrating the 65th anniversary of The New York Times Best Illustrated Children’s Books Award


The New York Times Best Illustrated Children’s Books Award was started in 1952, with the winners splashed across three pages in the Sunday Book Review of the November 16th issue. This symposium is aimed to celebrate the prestigious award - which is the only American prize for children’s books that includes books by illustrators who are not American – and provides an opportunity to examine more than sixty years of artistic trends and the evolution of tastes in the field of illustration.
This meeting will be accompanied by a publication that examines the key moments in this field over the past 65 years.

PROGRAMME

2.30 P.M. INTRODUCTION
Maria Russo, Children’s Books Editor, The New York Times

2.40 P.M. KEYNOTE SPEECH
Leonard Marcus, Children’s Book Historian, Author and Critic

3.30 P.M. COFFEE BREAK

3.45 P.M. PUBLISHERS, EDITORS AND ART DIRECTORS PANEL
Deirdre McDermott (Picture Book Publisher and Creative Director, Walker Books),
Anne Schwartz (Publisher, Schwartz and Wade/ Random House),
Neal Porter (VP and Publisher, Neal Porter Books, Holiday House),
Patricia Aldana (President, Ibby Foundation) 
Béatrice Vincent (Editor, Albin Michel Jeunesse)
Coordinator Steven Guarnaccia (Illustrator and Professor at Parsons School of Design, New York)

4.30 P.M. ILLUSTRATORS PANEL
Beatrice Alemagna (Italy - France),
Suzy Lee (South Korea),
Laura Carlin (UK),
Paul O. Zelinsky (USA),
Sydney Smith (Canada)
Coordinator Maria Russo, Children’s Books Editor,The New York Times

5.30 P.M. TOAST!

지난 번 시애틀에서 열렸던 IBBY 지역 총회 (이것도 포스팅을 할 이야기가 많은데...쓰다 말았음)에서 처음으로 미국에서 내 책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알 수 있었다. WAVE를 출판사에 보내자마자 싱가폴로 떠났기 때문에, 미국 독자들의 반응은 그저 웹상에서 보거나 개인적인 이메일로 받아 보는 게 다였고.

미국에서 작가들은 대개 책을 내면 전국 투어를 다니는데, 일단 나는 외국인이고 미국에 살지 않으니 당연히 투어는 물론, 각종 프로모션 기획도 없었다. (그런 것 치고는 책이 꾸준히 팔린 셈인데, 아마도 이 뉴욕타임즈 덕을 보았을 것이다)


시애틀 총회는 주로 학계 사람들이 많이 왔기 때문에, 학계에서 내 책들이 널리 쓰이고 많이 알려져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시애틀에서 한 교수가 그랬듯--우리는 우리 책들 보기에도 바쁘다 (한 해에 신간 2000권?)...-- 미국에선 라가찌 따윈 관심도 없을 듯. 실제로 어마어마한 책이 쏟아져나오고, 자국내에서 모든 것이 생산되고 소화되니까. 저 위에 밑줄 치긴 했지만, 사실 뉴욕타임즈 올해의 책 (이라고 번역하니 좀 이상하다)은 당연히 미국적인 취향을 반영하지만, 외국 번역서들이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이다. (칼데콧은 당연히, 국내 작가만 후보가 될 수 있다)


어쨌거나, 볼로냐가 재밌는건, 파워풀한 영미권 출판사들이 볼로냐에서는 살짝 변방으로 밀려나는 느낌을 준다는 것.
(물론 다시 미국으로 와서 보니 그저 미국이 세상의 중심이지만)


원래 "New York Times Best Illustrated book of 해당년도" 였으나 이제 "Award"로 바뀌었다. 좀 웃긴 이야기이지만 사실 처음 2008년에 WAVE가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그냥 신문사에서 리스트를 뽑은 거잖아?라고 생각했었다. 이번에 컨퍼런스를 보고서야 (본 게 아니라 심지어 패널로 참가하고서야- 무척 중요한 리스트이구나. 하고 깨달은 것이다. (뒷북도 이런 뒷북이...) 뭔가 좋은 일이라는 느낌적인 느낌 뿐, WAVE 때나 SHADOW 때나 두 번 다 싱가폴에서 어린 아기들과 씨름하고 있었을 때라 당시에 막상 어땠는지 잘 기억이....


이제 "상"이 되면서 심사위원도 아티스트들+ 뉴욕 공공도서관 사서들 이 되었다. 도서관과 함께 하는 이벤트가 된 것이다. 아마도 셀렉션에 많은 변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마리아 루소의 소개로 시작. 그는 뉴욕타임즈의 어린이 책 분야 편집장인데,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전체 이야기에 조금씩 살을 덧붙이며 잘 진행해 나갔다. 저 사람과 이야기 해보고 싶다..하는 따뜻한 느낌. 좋은 인상을 받았다.

레오나르도 마커스의 Keynote 강연. 그 간의 수상 목록을 훑어보며 경향성을 짚어보는 talk이었다. 뉴욕타임즈 어워드가 65주년이라는데, 도대체 어떻게 시작되었나. 그건 확실하지 않단다. 다만 그 origin은 아티스트의 관점이었고, 그게 계속 이어져 온 건 확실하다. 매년 리스트를 보면 정말 당대의 가장 아름다운. 당대에 가장 진보적인. 이란 표현에 걸맞는 책들이 선정되온 것 같다.


마침 그 자리에 심사를 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셋이나 되어 (스티븐 구아르나치아, 폴 젤렌스키, 마이클 플로카) 테이블로 불려나와 무척 캐주얼하게 토론이 이어졌다. 원래 의도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도대체 심사 기준이 뭐냐.가 촛점이 되어 각자의 변 (매우 다른!)을 들을 수 있었다.


NYT는 다소 랜덤하게 심사위원들의 취향이 반영되는 것 같았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편협해보일 수 있으나, 결국 아무리 general 하게 가려해도 당대의 유행과 뽑는 이의 경향성이 반영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라가치는 좀더 객관적이고 (도대체 객관적인게 뭐냐) general한 (도대체 general한 게 뭐냐) 관점을 포함시키려 애쓰지만, 뉴욕타임즈는 좀 더 랜덤하다---고 본다.라고 스티븐이 말했고. 오해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심사라는 과정은 언제나 위험부담이 있다. (살짝 청중들의 의아함..?이 느껴졌다)


그 자리에는 일러스트레이터들이 많아서, 보다 구체적인 답변을 요구하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심사할 때 가장 크게 고려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the work that makes you surprise?


사실 질문도 대답도 하나마나 한 것이다. 여기서 들은 대답으로 본인이 돌아가 작업한다고 도움이 될리 만무하다. 사실 난무하는 대답들 속에 폴의 코멘트가 인상적이었다.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마리아가 몇 번 그의 발언을 놓쳤다.)

"내가 찾는 것은 wonderfulness, not surprise"

더불어 자신이 후보작들을 보면서 어떻게 응답 respond 할지를 기대한다고 했다. 멋진 말이다. 우리도 새로운 그림책을 펼치며 매혹당하기를 기대하지 않던가? 아이들도 그 안에 펼쳐질 근사한 세계에 대한 기대로 책을 연다.
(물론 이 말도 각자 자신이 챙길 의미로 다가갈 뿐이지, 아주 실용적인 조언은 못 된다)


diversity의 문제도 살짝 언급되었다. 레오나르도의 강연에서 보면 사실 백인/남자 작가 그림책들의 역사처럼 보이기도하고. 마리아가 언급했듯, "그러고 보니 여기 역대 심사위원들이 공교롭게도 모두 백인/남자들이군요, 그러나 저쪽에 앉아있는, 나중에 발표할 일러스트레이터 패널들을 보면 다섯명 중 세명이 여성들이네요."
사실 일러스트레이터들의 국적도 diverse하긴 하다. 한국, 프랑스-이탈리아, 캐나다, 영국, 미국.

두번째 세션은 수상자를 많이 배출한 출판사의 편집자/아트 디렉터들의 라운드 테이블.

볼로냐에 오면 작가/아티스트 뿐 아니라 출판사를 조명해주는 것이 좋다. 물론 "좋은 책들(수상작들)을 발굴/배출하게 되는 비결이 뭐냐" 란 질문은 앞 세션과 마찬가지로 하나마나 한 질문이고 대답 또한 그렇게 예정되어 있지만, 편집자들의 관점을 들어보는 것은 새롭다. 특히 작은 출판사의 경우, 이런 뉴욕타임즈 리스트에 선정되는 것은 그들의 방향을 결정하고 주목받는 중요한 계기가 되는 것 같다. 그리 보면, 보석같은 그림책을 골라내어주는 안목이 참으로 고마운 것이다. 이번에 라가찌 상을 받은 정진호/ 배유정/ 안효림 작가의 책들도 그 수많은 책들의 더미에서 건져진 것이라 생각하면 (나는 마치 심해의 바닥에서 건져올려지는 빛나는 진주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참 상이란 것이 기가막히다. 싶다. 그 진주들이 계속 닦이고 닦여서 오래도록 빛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관객들에게 마이크가 넘어왔는데 난데없이 로라 칼린이 질문을 했다.
"어린이 책의 미래가 밝다고 보나요?

밝다는 사람도 있고 안 밝다는 사람도 있고 ㅎㅎ 답변의 디테일이 그닥 생각 나지 않는 걸 보면, 이것도 또 하나마나 한 주제라서 그렇겠지..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건 랜덤하우스의 앤의 답변이었는데,

(일단 출판계의 생태로 범위를 좁혀) 출판계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고 보는 것이
에이전트의 역할이 지나치게 커져 작가-편집자 관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 때문이라고.
예전처럼 강력한 유대 관게, 서로 함께 일한다는 의식이 점점 희박해지고
에이전트들은 자꾸 상업적으로 일을 키우려고만 하고
작은 것 하나 의논하려고 해도 에이전트를 통해야만 하니, 몇 달이 지나도 답변다운 답변을 얻기 힘든 경우도 있다고.
(라운드 테이블의 묘미는 이런 푸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에이전트 개념이 낯선 한국에서는 잘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지만
모든 것을 에이전트가 대행하기도 하는 영미권 출판계에서는 이런 일도 잦나보다. 에이전트란 것이 사실 출판사로부터 작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도 있기 때문에 사실 어느 편에 서던 각자 할 말은 있는 것이지만, 어쨌든 뭔가 "좋았던 그 시절"에 대한 향수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작가-편집자 관계는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서로 잘 맞아 더 좋은 작업을 이끌어내는 서로가 되려면 많은 노력과 인내심과 연륜 ㅎㅎ이 필요한 듯.


일찍 오라길래 컨퍼런스 전에 도착해서 작가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얼마전에 블루밍턴의 예쁜 서점 Corner Books에서 시드니 스미스 그림의 Town is by the Sea (우리나라에선 "바닷가 탄광 마을"로 번역되어 있는 듯)를 사고 우리 애들에게 읽어주다가, 참으로 아름다운 바다 풍경에, 그리고 이야기 끝자락에 울컥 했었다. "거리에 핀 꽃"도 참 좋아했으므로 마침 패널에 이름이 있길래 무척 반가웠다. 베아트리체와는 좀 더 이야기를 못 나눠 아쉽다.

이 작가들을 생각하며, 발표 원고를 준비하면서 떠오른 단어는 "contemporaries" 였다. 어찌 되었든, 각자 다른 곳에서, 그러나 같은 필드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료 작가들.이란 느낌- 뉴욕타임즈가 의미있다면 이들을 묶어주는 어떤 열쇳말 같은 것이겠다 싶었고. 마찬가지로, 컨퍼런스 룸에 앉아있는 작가들도 데뷔를 했건 기성작가이든 모두 contemporaries인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받고 영향을 주는. 그리고 서로를 격려하는. 좀 감상적인가? 감상적이기로 하지 뭐.


볼로냐에 처음 더미북을 들고 왔던게 십칠년 전 이네요. 그땐 여기가 뭐하는 곳인 지 몰랐습니다만. 으로 운을 뗐다. (정말 몰랐다. 그냥 거기 가면 재밌고 무엇보다 그림책이 무지 많으니 한번 가보라고 누가 그래서 간 거다)
나중에 동병상련(?)을 느꼈다는 몇 몇 관객들의 고마운 코멘트를 받았다. 

작가들은 본인의 수상작에 대해서 그리고 최근 작업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했고, 시드니 스미스 왈, 자기는 캐나다 변방 출신이고 게다가 캐나다 사람이라 미국의 여러 어워드에 자격이 되지도 않는데 여러 자리에서 주목 받게 되어 좋다는 이야기를 하던데. 여보세요. 시드니는 영어라도 하지요. 머나먼 나라 한쿡 사람 이야기 좀 해볼까요.가 맴돌았으나 이미 내 차례가 지난지라... (나의 이번 발표도 영어가 고생했다..ㅠㅠ 영어가 늘 고생한다)

개인적으론 베아트리체의 발표가 인상적이었다. 주로 미국출판사와 책을 내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시장에 따라 변화해야하는 것이 작가로선 참 힘든 일인 것이다. 베아트리체 본인은 미술관련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렇게 엄청난 드로잉 스킬을 구사하면서!) 최근에 갑자기 미국에서 여러가지 상들을 받으며 약간 어리둥절 하다는. 
그러게. 상은 어리둥절한 것이다. ㅎㅎ


세시간 짜리 컨퍼런스는 길긴 길었다. 일러스트레이터들은 세번째 세션이 궁금했을텐데. 중간에 자리를 뜨면 못 들어오는 구조--사람이 너무 많아서. 나중에 보러 왔다가 컨퍼런스 룸이 꽉 차서 들어갈 수 없어 놓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슈에 비해 방이 작긴 작더라. 그래도 오간 대화의 내용들이 재미있어 (특히) 한국 작가들이 들었으면 도움이 되었겠다.. 하는 아쉬움이 있다. 패널로 초대되니 제일 좋은 것은 맨 앞에 앉을 수 있다는 건가.





(...아이고 글쓰는 것도 힘들다. 정리한 것만 기억나는 몹쓸 기억력이기도 하고. 혹시나 이 글을 읽을 분들께 도움될만한 자락이 있기를 빌며 장황하게 써본다)



by 힌토끼 | 2018/04/04 23:01 | 그림책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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