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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일차_P3_잡글_축제로구나
2009년, 이탈리아 만토바에서 있었던 문학축제에 갔다. festivaletteratura -'축제'와 '문학'을 합쳐 만든 단어라고 했다. 책 축제의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만토바, 작은 도시에 도착. 숙소에 짐을 풀고 일단 나왔다. 광장에 있는 축제 센터에 가라고 적혀있었다. 들어가니 뭔가 잔뜩 쿠폰을 준다. 이게 뭔가요. 만토바 시내 이 쿠폰 그림이 붙어있는 어느 식당이든 이용하고 쿠폰을 내면 됩니다. 이 작은 도시의 중심가는 몇 번 골목을 돌자 대충 감이 잡혔다. 비행기가 어정쩡한 시간에 도착하는 바람에 미처 환전을 못해 만토바의 은행에서 혹시 가능할까 하였으나, 예상대로 두 군데 은행에서 싱가폴 달러를 환전 할 수가 없단다. 그리하야 "내가 돈이 없어서...."라며 계속 얻어먹고 다니고 쿠폰으로 버텼다. 어쨌든 그 축제에서 작가는 굶을 일은 없었다. 좋았다.

문학축제에 참가하는 모든 작가의 책을 판매하는 천막 서점이 도시 여기저기에 열렸다. 책을 안 사려 아무리 버텨도 안 살 수 없도록 길목마다 있었다. 한 군데 들어가서 책을 뒤적거리고 있으려니 누군가가 사인해달라고 이탈리아판 <파도야 놀자 L'onda>를 내민다. 나를 어떻게 알지? 알아보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머무르는 동안 이곳에서 통틀어 동양사람을 나말고 딱 한 사람 봤으니까. 오로지 이탈리안의 축제인 것 같았다.


만토바 곳곳의 오래된 궁전들에서 강연이나 대담, 작가와의 대화, 워크샵등이 열렸다. 골목을 돌 때마다 긴 줄이 있었다. 축제의 스폰서 중의 하나인 커피 브랜드 illy는 거리에서 진한 까페 한 잔씩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었다. 나도 여늬 만토바노들 처럼 점심을 먹고 매번 그곳에 들려서 신선한 에스프레소를 한 잔씩 마셨다.

쿠폰을 다 쓰고 싶었지만, 꼬라이니 사람들과 함께 다니다보니 주로 cortile frattini에 가서 식사하게 되었다. 이곳은 페스티발 참가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공동식당이다. 운영자는 "서비스업 교육 학교"로, 이 학교에서 호텔 업무나 서비스, 요리등을 배우는 학생들이 이 축제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실습을 하는 셈이었다. 뷔페식으로 간단한 만토바의 전형적인 음식들을 제공하고 학교 학생들이 서빙하는데, 실제로 선생님 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돌아다니며 감독하고 있더라. 좋은 아이디어다. 음식도 소박하고 좋았다.

나랑 배시계가 같은지, 이곳에 오면 어김없이 Pietro를 만날 수 있었다. Corraini 부부는 이 만토바 동네의 지역 유지 쯤 되나보다. 꼬라이니에서 일하는 니꼴라와 밥먹으려고 줄을 서있는데, 우리 대화에서 꼬라이니가 어쩌구저쩌구 소리를 듣고 어떤 자원봉사 할아버지가 다가와서 먼저 들어가게 해주는거다. 니꼴라가 그런다. 봤쑤? '꼬라이니'의 위력을.

아닌게 아니라 꼬라이니 부부는 만토바의 지역활동에 아주 적극적으로 개입되어 있었다. 이 축제만 해도, 1997년에 아주 작게 시작되었는데, 꼬라이니가 원년 위원회 여덟명 중 한 명이었고, 여전히 그 여덟명이 이 축제를 주관하고 있다고 했다. 처음 시작은 아주 지역적인 문학축제였는데, 그것이 점점 커져서 이젠 이태리에서 가장 유명한 축제 중 하나가 되었고, 국제적으로도 많이 알려져 다양한 외국작가들도 초청하게 되었단다. 보여주기식으로 규모만 키우고 밖에서 유명인들 모셔오느라 애쓰지 않고, 원하는 사람들이 시작해서 원하는 사람들이 즐길 수 있을 때, 그것이 정말 "축제"이지 않을까.

축제에 참가하는 자원봉사자들도 인상적이었다. 점심먹으러 이 cf에 오면 푸른 티셔츠를 입은 젊은이들이 왁자지껄 즐겁게 밥먹는 풍경이 많이 보였다. 그 모두가 자원봉사자라고 했다. 이번 자원봉사자들은 700명에 육박했는데, 신청자가 너무 많아 그들을 먹고 재울 경비가 부족하여 일부 거절해야 했단다. 피에트로에게 계속 물었다. 중고생들도 많아 보이던데, 학교에서 단체로 참가시키는 건 아니여? (지극히 한국적인 발상의 질문). 아니. 모두 개별적으로 자원한 친구들이여. 이태리 뿐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에서들도 오기도 하지. 이 친구들이 이 식당의 쓰레기도 치우고 워크샵 진행도 하고 통역도 하고 운전도 해. 실제로 내 워크샵에도 다섯 명의 10대 친구들이 와서 도와주었다.

옆에 앉아있던 Stefania도 자신은 밀라노 근처에 살지만 축제에 자원해서 와서 통역자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럼 너는 통역자라서 여기서 지원을 해주겠구나? 했더니, 내가 통역자라서가 아니라 '모든' 자원봉사자들에게 식사가 주어져. 만토바에 살지 않는 봉사자들에겐 숙소도 제공되지.

그럼 이 비용을 다 어찌 충당해? 50%는 기업체 스폰서, 25%는 정부의 지방 자체 단체 지원 보조금, 나머지 25%는 이벤트 티켓값으로 충당한다고 했다. (이벤트 티켓값은 대개 3-5 유로 정도로 매우 쌌다.) 스폰서 지원이 커서 그런지, 도착해서 받은 welcome bag안에는 스폰서 로고가 새겨진 볼펜, 티셔츠, 두터운 브로셔 따위가 잔뜩 들어있었다.

매년 자원봉사자가 700명이라면, 그야말로 모두가 축제에 참가하고 있는 것 아니겠나. 특히 십대 청소년들에게 이 경험이 얼마나 소중하겠나. 어떤 것에 적극적으로 개입되어 있다는 느낌. 이렇게 다양한 작가들과 연계되어 실제로 작가들과 만나고, 대화하고, 돕고, 이벤트에 참가하는 경험. 그들이 실제로 '문학'에 얼마나 관심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런 경험 후에는 어쨌든 '문학'이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게 될 테니 그것만 해도 참 좋겠다 싶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자원봉사자들과 그들의 가족들과 참가 작가들과..모두가 섞여 즐기는 이 축제의 분위기를 구경하는 것이 좋았다. 내가 떠나던 날, Pietro가 아쉽게 말했다. 내일까지 네가 있으면 좋을텐데. 내일이 축제의 마지막 밤인데, 그야말로 모두가 모여 파티를 하거든. 장관이야.

생각만해도. 좋았다.

Giovanna의 조수 Nicola가 축제 기간 내내 나를 세심히 돌봐주었다. 이 친구가 만토바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감히, 습도 70%인 싱가폴에서 온 나에게, 만토바가 분지형태에 인공호수로 둘러싸여 얼마나 습한지 너는 상상도 못할거야..라고 한다.누가 더 습한 데서 사는지를 놓고 다투다가, 그나저나 너희는 이런 축제가 있어서 정말 좋겠다.했더니 니콜라의 눈빛이 바뀌었다.

이 축제동안은 모든 골목과 모든 식당이 북적거리지만, 나흘동안의 축제가 끝나면 다시 너무 너무나 조용한 유령의 도시가 되지. 글쎄. 만토바. 좋긴하지만 난 활기찬 대도시로 갈거야. 이곳은 너무 좁아.한다. 우리는 왜 항상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을 그리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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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힌토끼 | 2021/01/26 22:07 | 100일의 글 쓰기 | 트랙백 | 덧글(1)
86일차_P1_물건들: 그림책이란

언제인가 "The Art of Clean Up"을 보고 애들이 낄낄거리고 있길래 물어봤다.

이 책 재미있다. 가장 무용한 일을 하는 그림책이다. 주차장에 선 차들을 색깔 별로 분류하고, 선탠하는 사람과 비치 파라솔, 수건, 수영복을 분류하고, 심지어 우주의 별들도 모양과 빛의 크기에 따라 분류해서 저렇게 모아 놓는다. 그리고선 천연덕스럽게 제목을 "정리의 기술"이라 붙인다. 아, 내가 그림책이라 했나?



이 책은 그림책이야?

응.

왜?

그림이 있어서.

그림이 있으면 다 그림책이야?

아냐. 이건 사진이니까 그림책이 아닌가?

사진도 그림인데? "구름빵"은 그림책 아니야?

그림책이야.

왜 그림책이라고?

얇아서.

얇으면 다 그림책이야?

그림으로 되어 있어서.

그림이 많으면 그림책이야?

응.

그럼 유명한 화가들 그림 모아넣은 것도 그림책이야?

음... 아니야. 한 사람이 쫙 해야돼.

그럼 엄마 그림만 다 모아서 책으로 만들면 그림책이야?

음... 아니야.
재미가 있어야 돼.
웃겨서 이건 그림책이야.

재미있고 웃기다는 건 어떤거야?

내용이 있어야 돼.
이야기가 있어야 돼.
그리고 글보다 그림이 훨씬 많아야 돼.

양이 중요해?

양이 중요해. 그리고 그림이 중요해.

그림이 중요해?

그림이 이야기를 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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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힌토끼 | 2021/01/25 22:18 | 100일의 글 쓰기 | 트랙백 | 덧글(1)
85일차_P1_잡글: 어쩌고 월드
object 생선

"봉준호가 봉준호한 영화, '기생충'"-어느 영화 리뷰의 제목이다. 못지않게 "봉준호 월드"라는 말도 유행했다. 자기 스타일이 확실한 감독이다.
"마더"를 볼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 이거 중요한 복선이거든. 유심히 봐 둬" 라고 감독이 자꾸 옆에서 속삭이는 것 같다. 메시지는 근사하게 다층적이고 강렬하지만, 관객 입장에선 잔뜩 코너에 몰려 이야기를 듣는 느낌도 있고. 이상하게 영화를 얌전한 관객 입장으로 볼 수가 없고 자꾸 감독 머릿속을 생각하게 되네. 뭐랄까, "저 느낌"을 보여주고 싶었던 "그 느낌"을 너무 알 것 같아서 영화에 몰입이 안 된다. 작품 속에 창작자가 매 갈피 보이는 건 좋은 건가, 나쁜 건가?

스타일. 누가 봐도 그 아티스트의 작품이란 것을 알 수 있는 표식은 중요한가?
강연자리에서 "어떻게 하면 나만의 스타일을 갖게 되나요?" 라는 질문을 많이 받곤 한다.

영화 감독의 말에 공감하곤 한다. 아마도 이야기와 이미지를 동시에 다룬다는 점, 혹은 일의 방식이 비슷해서 일 수도 있겠다. 감독 본인이 오리지널 각본을 쓰고 찍는 경우도 있지만, 남이 쓴 각본이 먼저 있고, 그 각본을 낙점받아 영화를 찍어내는 경우는 마치 글 원고를 받아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와 비슷하지 않나. 요즘은 감독이 편집을 하지만, 예전에는 제작사에서 편집을 했다고 하니, 그건 그림만 그려서 넘기는 느낌일 것 같다. 여기 그림 조금 저기 그림 조금 따서, 애초의 의도와 상관없이 짜집기 된 책을 받아보는 그런 느낌?

그림책 일은 스타일이라는 측면에서는 종종 애매하다. 몇 년에 한 번씩 자기 작업을 내놓는 작가도 있지만, 대부분의 작가들은 다른 작가의 글에 그림을 그리는 일을 더 많이 한다. 원고에 그림만 그린 경우, 물 흐르듯 정말 자연스럽게 텍스트에 녹아드는 그림도 있고, "이거 내가 그렸거든! 매력있어? 심쿵했어?" 하고 자꾸 물어보는 그림도 있다.
"혼자서 할 때와 남의 글에 작업을 할 때는 어떻게 다른가요?" 라는 질문도 많이 받는다. 그때그때 다른 대답을 하긴 하지만, 공통되는 답은 주로 이렇다. (1.돈을 벌려고요 ), 2.내 세계를 확장시키고 싶어서요.

우선은 (정말 당시에 이 일을 안하면 안 되는 형편이 아니었다면) 그 텍스트가 마음에 들어서 선택을 했을 것이다. 뭔가 그려낼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그 텍스트에 들어가서 최선을 다한다. 원 텍스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최선을 다해서 내 방식대로 해석해 본다. 그리고 표현해 본다-그때에 아마 기로에 설 것이다. 이것에 개입하는 아티스트로서의 "나"는 얼만큼일까?

그 애매한 지점을 정말 절묘하게 설명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글이 생각난다. '장인'과 '작가'로 구분한다면, 본인은 몇 편의 영화를 찍는 동안 '장인'이고 싶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제철 생선을 어떻게 요리하면 재료가 가진 맛을 살리면서 손님도 만족할 만한 요리를 낼 수 있을지를 궁리하는 것이 장인이다. 물론 본인은 스스로 각본을 쓰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작가라고 불릴 수도 있지만, '어떤 재료라도 나의 프렌치 요리로 완성해 보이겠어' 같은 타입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확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어떤 원고가 들어오던 이수지가 이수지해 보이겠어!'라고 써놓고 보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온다. 자기 이름을 대입해 보시라. 금방 답이 나올테니.

만약 저의 세계관 안에서만 영화를 계속 만들어 나가면, 영화가 점점 축소 재생산되어 '어쩌고 월드'라고 불리는 세계 속에 갇힐 것 같습니다. 그보다 별로 접점이 없는 사람이나 사물 등과 만나서 만들어 나가는 편이 저 자신도 재미있을뿐더러 새로운 발견도 있습니다.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고레에다 히로카즈

나의 월드가 엄청 풍부해서 파도파도 끝이 없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적당히 그저 맴맴도는 상태는 가장 피하고 싶지 않을까. 나의 월드를 지속적으로 풍부하게 하기위한 방법, 외연을 넓히는 점점을 끊임없이 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저 글을 이렇게 맺는다.

제 경력상 분기점이 된 이 세 작품 덕분에 저의 수용력이 아주 커진 것 같습니다. 물론 감독의 이름으로 이야기되는 작품을 찍고 싶긴 하지만, 적어도 50대 동안에는 의식적으로 바깥쪽을 향해 세계를 넓혀 나가고 싶습니다.


깜짝 놀랐다. 적어도 50대 동안에는. 에 밑줄 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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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힌토끼 | 2021/01/24 11:19 | 100일의 글 쓰기 | 트랙백 | 덧글(0)
84일차_P3_잡글: 두서 없음

230

예술은 행동이나 삶을 대체한다. 인생이 감정의 의지적 표현이라면 예술은 감정의 지성적 표현이다. 우리에게 없는 것이나 감히 바랄 수 없는 것, 또는 우리가 이룰 수 없는 것을 꿈속에서는 소유할 수 있는데 이꿈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예술이다. 감정이 너무 격해서 행동으로 옮겼는데도 만족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이럴 때 삶 속에서 미처 행동으로 다 표현되지 못하고 남은 감정은 예술 작품으로 형상화된다. 즉 예술가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표현하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갖고 남은 것을 표현한다.

사실 없는 자서전/페르난도 페소아

책이나 읽자. 이럴 때는 페소아. 페소아의 두서없음이 오늘따라 와닿네.
by 힌토끼 | 2021/01/23 11:59 | 100일의 글 쓰기 | 트랙백 | 덧글(3)
83일차_P3_물건들: 엷은 공기
object: 강이 사진

강이 책에 관한 일지를 찾았다. 앞머리에 이렇게 써있다.

어떤 생각은 휘발성이 있어서
그 때 빨리 붙잡지 않으면 날아가버린다

가슴이 뜨거울 때 빨리 그려야 하는 그림이 있는 듯.

_____________

표지- 파란 (꿈속의 색) 천 바탕에 가운데 강이 얼굴이 까맣게 들어가면 좋겠다.


<눈밭의 검은 개> 작업 일지
(2018. 10. 27 첫번 째 더미북 끝. 작업 기간은 10월 한 달)


강이 이야기는 진작 부터 쓰고 싶어서 몇 번 시도를 했었다. 처음 스케치에선 화자가 아이들이었고, 아이들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강이의 즐거운 일상 이야기였다. 에곤 타운센트의 책은 그런 즐거움과 다소의 허무맹랑한 모험으로서 참고가 되었다.

그 즐거운 책은 계속 그런 상태로 남아있었다. 강이의 이야기는 그냥 에피소드처럼 남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고, 미국에 다녀왔고, 일이 그리되었다. 한동안은 생각만해도 눈물이 줄줄 흘러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소식을 전했을 때 아이들의 슬픔이란...그것을 보고 있는 것도 힘들었다. 아이들이 자기 전 누워있을 때 이야기를 전한 죄로, 오랫동안 아이들은 베개를 베고 누우면 늘 훌쩍훌쩍 울었다.

한국에 돌아오자 빈 마당이 더 넓어보였다. 강이가 있던 자리를 보는 것 자체가 괴로웠다. 그러더니, 돌아와 한 달 쯤 지나 집이 좀 정리가 되고 책상에 앉으니, 갑자기 이미지가 솟았다. 빨리 휙. 잡아내는 책을 만들자는 생각과 더불어, 지금 이 감정이 아니면 다시는 못 만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이란 시절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던가. 어느 순간 솟아나는 그 감정을 놓치면 안 될 것 같았다. 이도저도 아니더라도, 그냥 내 안에서 작은 의식처럼 치루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예전에 찍어뒀던 사진들을 꺼내어 보고 있노라니, 몇 년 새에 강이 얼굴의 변화가 보였다. 그 까만 얼굴에서도 미세하게 어른 개의 얼굴로 변화하는 것이 드러나보였다. 사진을 보고, 내가 좋아하는 강이의 느낌을 아주 빠르게 많이 많이 그려냈다. 실제로 그림 그린 시간은 어쩌면 사나흘 정도 인 것 같다. 그림으로 이미지를 쓴다.는 것이 정말 맞다는 생각이 드는 작업 과정이었다. 종이를 보고 있으면 그림이 보였고, 그것을 화면에 고정시키는 느낌으로 그려갔다. 단순히 이미지의 윤곽만 보이는 게 아니었다. 선의 강도, 농담, 그리고 심지어 색까지 보였다. 강이가 종이위에 나타나면 붙이고, 나타나면 붙이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걸 늘어놓고 있으니 아이들이 와서 보고 무척 싫어했다. 속상하다고. 나는 오히려 자꾸 들여다보고 있으니 마음이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그냥 계속 작업했다. 책상 위가 강이 그림으로 가득 찼다. 한 번은 바다가 와서 그 그림들을 찬찬히 보고 써놓은 글들을 읽더니 눈물이 터졌다. 흐느낌으로 시작한 그 울음은 결국 대성통곡이 되어서 나는 작업을 멈추고 바다를 오랫동안 안고 있어야 했다. 이건 너무 가혹한 일일까? 산이에게 완성된 1차 더미를 보여줬더니 찬찬히 보더니 돌려주는데 눈에 눈물이 가득하다.

강이가 우리 집에 오게 된 경위도 그렇고 검은 개가 풍기는 이미지도 워낙 극적인 요소가 많아 이야기의 흐름은 금방 잡혔다. 그런데 이렇게 사실 그대로를 담은 진행이면 끝도 그렇게 가야하는 건가? 몇 몇 이미지들은 나 조차도 보는 것이 힘들었다. 엄마가 카톡으로 느닷없이 강이가 링겔을 맞고 있던 사진을 보내줬는데 그걸 보고는 나도 한참 울었다. 하지만 이것은 “이야기”인데. 한 번 가볍게 뛰어올라도 되지 않을까?


..슬픔에 대한 시도 씁니다.

슬픔은
깊고 어둡네
침대 밑
공간처럼

슬픔은 높고
가볍네
머리 위
하늘처럼

슬픔이 깊고 어두울 때
감히 거기에 갈 수 없네

슬픔이 높고 가벼울 때
엷은 공기가 되고 싶네

마지막 연은 내가 여기 이렇게 있고 싶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냥 사라지고 싶습니다.



I write:

Sad is a place
that is deep and dark
like the space
under the bed

Sad is a place
that is high and light like the sky
above my head

When it's deep and dark
I don't dare go there

When it's high and light
I want to be thin air.

This last bit means that I don't want to be here.
I just want to disappear.



슬픔에 관해 생각하면 항상 떠오르는 그림책은 마이클 로젠/퀜틴 블레이크(김기택 역)의 "내가 가장 슬플 때"이다. 마이클 로젠이 열 여덟살 아들 에디를 잃고 썼던 글이다. 여기 들어있는 이 시가 너무 좋아서 늘 마음속에 넣어가지고 다닌다. 특히 thin air라는 표현은 사무친다. 너무 슬플 때, 그냥, 완전히 여기서 사라지고 싶다는 그 느낌이 절절하다.

한 번 가볍게 뛰어올라도 좋지 않을까?라는 질문은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결국 너는 사라지겠지.
결국 너는 엷어지겠지.
내 가슴을 가볍게 딛고 달아나겠지.

어떻게 끝나도 끝난 게 아닐테니, 그냥 책의 끝은
그냥 편안하게 바라보기로 마음먹었다.

어떻게든 끝은 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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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힌토끼 | 2021/01/22 09:38 | 100일의 글 쓰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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