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s the use of a book without pictures or conversations?"said Alice.
by 힌토끼
메모장
그림+책을 만드는 힌토끼의 잡다한 이야기
suzyleebooks.com
카테고리
전체
그림책
그림+책
산+바다
토끼굴 일상사
Singapura
letters
번쩍
poignant
정답은 없다
작가가 작가에게
산+바다의 책장
미분류
최근 등록된 덧글
요즘 저의 고민을 한방에..
by 글쎄 at 08:05
ㅋㅋㅋㅋㅋㅋ
by 힌토끼 at 09/22
ㅎㅎ 감----사 합니다...
by 힌토끼 at 08/21
바쁘려면 바쁘고 안 바..
by 힌토끼 at 08/21
내 블로그를 내가 넘 안 ..
by 힌토끼 at 08/21
늘 응원하며 애정으로 ..
by 허경원 at 08/16
그래. 진짜 작가의 방은..
by 힌토끼 at 08/08
안녕 이수지 작가님~ N..
by Luis at 06/25
I'm so excited with y..
by Luis at 06/02
As always, 감사합..
by 힌토끼 at 04/13
최근 등록된 트랙백
이전블로그
more...
이글루 파인더

rss

skin by 네메시스
창비어린이 인터뷰 (2017 가을호)
경계 그림책 삼 부작의 작가, 이수지를 만나다  Chanbi_interview.pdf


김소영 sohosays@hotmail.com
연재·그 작품 그 작가(19)

이수지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국과 영국에서 회화와 북 아트를 공부하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그림책을 펴냈다. 보스턴 글로브 혼 북 명예상, 미국 일러스트레이터 협회 올해의  원화 금메달 등을 수상했고, 2016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의 최종 후보로 선정되었 다. 지은 책으로 『거울속으로』 『파도야 놀자』 『그림자놀이』 『동물원』 『나의 명원 화실』 『검 은 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토끼들의 밤』 『이수지의 그림책-현실과 환상의 경계 그림 책』 등이 있고, 『이렇게 멋진 날』 『아빠, 나한테 물어봐』 『그림자는 내 친구』 등에 그림을 그렸다.


모든 책에는 경계가 있다. 여기서 경계는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물리적인 선, 책이 접히는 부분을 뜻한다. 사진이나 그림이 여기 걸쳐지면 필연 적으로 이미지가 왜곡된다. 그림책에서 경계는 종종 골치 아픈 부분이다.  그림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최대한 경계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판면을 짜 거나 경계를 아예 없는 것처럼 취급한다. 읽는 사람들도 보통은 무시한다. 이수지는 이 경계를 이야기의 일부로, 나아가 주제로 삼았다. 『거울속 으로』(Corraini 2003, 비룡소 2009), 『파도야 놀자』(Chronicle Books 2008, 비룡소  2009), 『그림자놀이』(Chronicle Books 2010, 비룡소 2010)는 각각 아름답고 재미 있는 ‘글자 없는 그림책’이면서, 이 경계를 전면에 드러냈다는 점에서 흥 미로운 연작이다. 작가는 창작 노트 『이수지의 그림책』(비룡소 2011)에서  이 책들의 작업 과정과 거기 담긴 생각을 살뜰하게 보여 주었다. 어쩌면 말로 하고 싶지 않아서 ‘글자 없는 그림책’을 냈고, 묻는 사람이 많아서 창작  노트를 보여 주기까지 한 건 아닐까. 그런 작가에게 더 물어보겠다고 하 면 곤란한 건 아닐까. 걱정이 적지 않았지만, 모르는 척하고 양평에 사는  작가를 찾아갔다. 이수지를 인터뷰할 기회를 마다할 독자는 없을 테니까.

경계를 놀이터 삼아

김소영  세 편 중 마지막인 『그림자놀이』가 출간된 게 벌써 2010년의  일입니다. ‘경계 그림책 삼 부작’ 이야기는 이미 인터뷰나 강연에서 많이  들려주신 것으로 알아요. 그래도 굳이 여쭈어보고 싶네요. 선생님에게 이  삼 부작은 어떤 의미인가요?

이수지  처음부터 ‘삼 부작’으로 시작한 건 아니에요. 나중에 세 권을  묶어 제가 주장하고 다니니까 할 수 없이 그렇게 된 거예요.(웃음) 『거울속 으로』가 2003년, 『파도야 놀자』는 2008년, 『그림자놀이』가 2010년에 나왔 어요. 그중 『파도야 놀자』가 독자들이 제일 많이 알아봐 주는 책이고, 사 실 『거울속으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편인데, 이렇게 삼 부작으로 묶 이면서 다시 읽히기도 해요. 맨 처음에 나왔지만 나중에 재조명된 부분이  있죠. 책의 매력은 이런 거구나 싶어요. 신간이 아니어도 독자들이 다시  찾아 읽을 수 있어서 너무 고맙죠. 저는 회화 공부를 해서 그런지 기본적으로 매체나 형식에 관심이 있어 요. 삼 부작은 그런 관심을 하나하나 쌓아 가는 작업이었다는 의미가 있 어요. 그 전에는 그림책에 대해 막연한 동경을 지니고 있었다면 이 작업 을 하면서 방향성을 만들어 간다는 기분을 느꼈죠. 결과적으로 제가 어디 로 가고 싶은지 알게 해 줬기 때문에 저도 삼 부작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김소영  최현미 기자가 선생님의 그림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Corraini 2002, 비룡소 2015)를 두고 “이수지 작가의 예고편이자 스포일러다.” 라는 재밌는 표현을 하셨더라고요. 그 표현을 빌리자면 삼 부작 역시 이 수지 작가의 본편이자 이후 작업의 예고편이 된다고 생각해요. 선생님 입 장에서 느끼는 작업의 맥락도 있지만, 독자들한테도 이수지라는 작가뿐  아니라 그림책이라는 세계의 좋은 안내가 되는 연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편씩 얘기해 보면 좋겠는데요, 먼저 『거울속으로』는 맨 처음에 어떻게  아이디어를 떠올리셨어요?

이수지 제 그림책 『이상한 나라의 앨 리스』에 쌍둥이 형제(험프티 덤프티)를 배치하면서 거울 이미지를 떠올렸어요.  그 아이디어만 쏙 빼서 책으로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했죠. 『거울속으로』는  정말 쉽게 만들었어요. 딱 일주일 걸렸 죠. 아이디어도, 보여 주고자 했던 것도  명확했거든요. 사실 일종의 실험이라고  생각했고 이 실험이 실제로 책이 됐을  때 어떤 느낌인지 보고 싶었어요.

김소영 원래부터 『이상한 나라의 앨 리스』를 각별히 좋아하셨어요?

이수지 영국에 유학 갔을 때 처음 본  전시가 루이스 캐럴의 회고전이었어요. 그 전시에서 루이스 캐럴이 직접  앨리스를 그리기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잘 못 그렸기 때문에 풍기 는 기묘함이 오히려 매력적이었어요. 그때부터 앨리스 책이 눈에 들어오 기 시작했죠. 어렸을 때 읽긴 했지만 막연한 느낌만 남아 있어서 영어로  한번 읽어 봤어요. 사실 그 책이 어렵잖아요. 그래도 제 나름대로 이해하 면서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죠.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변주한  걸 보면서 나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김소영  어린이들은 소녀가 거울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이상하게 여 겨서 책의 접힌 부분을 펴 보려고도 하고, 무서워하기도 해요. 그리고 정 말 둘이 똑같은지, 서로 다른 점은 없는지 틀린 그림 찾듯이 보더라고요.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책은 역시 『파도야 놀자』인데요, 『거울속으로』 의 연장선에서 생각하신 건가요? 이수지  아니에요. 그래서 5년이라는 시간 차이가 생겼지요. 거울과 같 은 ‘경계’에 대한 관심은 계속 가지고 있었는데 어떤 식으로 풀어야 할지 잘 몰랐어요. 한편으로는 파도라든가,  해변에서 볼 수 있는 풍경으로 작업해  보고 싶은 마음도 늘 있었어요. 아이와  파도가 노는 모습에서 서로 다른 두 세 계 사이의 긴장감을 느꼈고 그게 자연 스럽게 『거울속으로』와 연결되더라고 요. 혹시 이 아이디어를 이어 갈 수 있을 지도 모르니까 판형과 포맷을 똑같이  해 보자 생각했죠. 그런데 『거울속으로』 는 이탈리아 출판사와 작업했고 『파도 야 놀자』는 미국 출판사에서 냈기 때문 에 혼자만의 생각이었어요.(웃음)

김소영  이야기가 나온 김에 말씀드 리자면, 저는 이 세 권을 나란히 보았을 때, 경계에 대한 작가의 시각도 달 라진다고 느꼈어요. 『거울속으로』의 경계는 이것 때문에 재미도 있지만  깨짐으로써 위험해지고 또 외로워지는 경계예요. 끝내 넘지 못한 경계고 요. 그런데 『파도야 놀자』의 경계는 밀고 당기는 놀이 끝에 지워지는 경계 죠. 어린이가 한 번 가고, 파도는 화답하듯이 더 크게 한 번 오고요. 이 책 의 경계가 가장 여유 있고 허용적이죠. 『그림자놀이』의 경계는 환상 세계 를 아예 독립시키는 경계였어요. 작업하시면서 실제로 변화가 있었나요?

이수지  저도 나중에 깨달았어요. 『거울속으로』 때는 아이디어를 구현 해 보고 싶어서 흥분돼 있었고 다행히 그 결과물이 만족스러웠워요. 그  덕분에 다음부터는 ‘경계’가 제 놀이터가 되었어요. 『파도야 놀자』 때는  좀 더 놀아 보는 느낌이 강했죠. 『그림자놀이』는 형식화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여러 가지 경계를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김소영  좀 단순한 질문인데, 어떤 책 작업이 가장 즐거우셨어요?

이수지  그때그때 서로 다른 재미가 있었어요. 어떤 분들은 『거울속으 로』 같은 작업은 더 안 하느냐며 저의 ‘다크 사이드’를 드러내 보라고 해 요.(웃음) 그런데 저는 이게 ‘다크’ 하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김소영  그렇죠. 다만 대상이나 연출하는 장면에 따라서 분위기가 달라 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거울속으로』는 자기를 비춰 보는 거니까 재미 있는 한편으로 두렵기도 하고요.

이수지  『거울속으로』에서 거울이 깨지는 마지막을 사람들이 많이 두 려워해요. 그런데 저는 ‘거울은 깨져야 돼.’라는 느낌이 무척 강했어요.  ‘거울은 깨지라고 있는 거야. 미안하지만, 깨질 수밖에 없어.’ 하는 마음이 었죠. 깨지지 않고 넘어가면 미진해요. 그리고 거울이 깨지면서 아름답고  즐거울 순 없죠. 거울이 깨지는 것만큼이나 『파도야 놀자』의 집채만 한 파도도 위협적으로 느끼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아이들보다 어른들에게서  그런 반응이 많아요. 관점의 차이가 크다는 생각이 들죠.

동시에 일어나는 이야기

김소영  어린이들은 『파도야 놀자』를 읽으면서 자기 경험을 많이 얘기 해요. 제 경험을 비추어 읽자면 저는 『그림자놀이』를 좋아하는데요. 왜 그 럴까 생각해 보면 앞의 두 권의 안내 덕분인 것 같아요. 이 책에서 무엇을  발견해야 재미있는지 감을 잡아서, 제목대로 ‘놀’ 수 있거든요. 한 어린이 는 『그림자놀이』를 보고 아래에서 위로 넘기는 책인데, 표지의 작가 소개 만 읽는 방향이 다르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어요.

이수지  책을 위아래로 안 넘기고 옆으로 넘길 수도 있죠. 책을 보는 방 법은 많으니까요.

김소영  그러네요.

이수지  저도 나중에 안 거예요. 이 책의 더미북을 옆으로 넘기면서 봤더니 사팔눈이 되어 정신이 하나도 없고, 무슨 얘긴지 모르겠더라고요. 저 는 이런 게 좋아요. 기승전결이 확실한 이야기도 즐겁지만, 남들이 똑바로  가고 있으면 그걸 흩뜨리는 게 좋아요. 어떤 것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막  튀어나오는 그런 느낌. 많은 것들이 동시에 진행되는 느낌을 받는 것 자 체가 하나의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책은 우리가 순서대로 그림을 보게 되지만, 회화 작품을 보면 이야기가  동시에 일어나잖아요. 보는 순서에 따라서 마음속에 일어나는 감상이 달 라지기도 하고요. 그런 일들이 책에서도 일어날 수 있지요. 그러니 다양하게 보는 데서 오는 느낌을 알아봐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핑계 인가.(웃음)

김소영  아니요. 재미있는 말씀이에요.

이수지  최근에 『선』(Chronicle Books 2017년 9월, 비룡소 11월 출간 예정)을 만 들면서도 나는 왜 이렇게 정신없는 걸 좋아할까 생각했거든요.(웃음) 『그림자놀이』에서 아이가 놀고 있는 한편으로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것을  흔히 현실과 환상으로 나누어 말하곤 하죠. 하지만 예전에 한 워크숍에서  어떤 분이 저에게 ‘너의 책에는 두 개의 리얼리티가 있다.’라고 하시더라 고요. 경험하는 순간에는 둘 다 리얼리티인 거죠. 저는 그 접점을 좋아하 는 거고요.

김소영  삼 부작을 읽고, ‘아침에 친구가 없어서 혼자 거울 보면서 놀다 가, 점심때 파도랑 놀면서 노는 법을 배우고, 저녁엔 그림자랑 노는 얘기’ 라고 말한 어린이가 있었어요.

이수지  독자들이, 특히 어린이들이 주인공이 왜 그랬는지, 왜 여기에  있는지 나름의 맥락을 만드는 게 참 멋져요.

작가의 손으로 만드는 무대

김소영  선생님 책들은 외국에서 먼저 출간되고, 국내에는 한참 뒤에  나온 경우도 있어요. 인터뷰 준비하면서 국내외 통틀어 발표 순서로 모아  봤더니, 전작에서 이어지는 영향이 보이더라고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 스』 속 연극이 『그림자는 내 친구』(박정선 글, 길벗어린이 2008)의 그림자극이  되고, 『움직이는 ㄱㄴㄷ』(길벗어린이 2006)에서 ‘사라지다’의 빈 장면이 『거울속으로』나 『그림자놀이의 빈 장면으로 이어지는 것처럼요. 선생님 작 품들의 출발점이 궁금해졌어요.

이수지  저는 대학 때 회화 작업을 연극 무대처럼 크게 했어요. 이를테 면 엄청 큰 학교 식당에서 조리사들이 수술복 느낌이 나는 작업복을 입고  큰 통을 휘젓는 모습을 보면 어딘가 감동적인 거예요. 한편으로는 저 일 상적인 장면을 다른 맥락에 두면 어떨까, 예를 들어 연극 무대에 올리면  어떻게 보일까 그런 생각을 했죠. 국숫집 앞에서 권투 선수들이 격렬하게  싸우고 있다거나, 갤러리에서 레슬링 선수들이 싸우고 있다거나 이렇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매치시키는 작업을 했어요.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그것도 두 가지 세계, 공존할 수 없는 세계가 한  장소에 있는 것이더라고요. 그런 것을 드러내는 형식을 고민하다 보니 자 연히 책의 페이지 구성, 접히는 방식 등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죠. 그림자에 대한 호기심도 연극에서 온 거라고 봐요. 강렬한 조명과 그것 때문 에 생기는 그림자. 그러던 차에 『그림자는 내 친구』 기획을 알게 되어 작 업을 맡았죠.

김소영  『그림자는 내 친구』는 논픽션이지만 이야기책처럼 느껴지는  대목이 많아요. 그림자의 형태나 움직임도 다양하고요. 

이수지  작업할 때 참 재미있었어요. 이 책에 그림자극을 연출하는 ‘손’ 이 직접 등장하는 장면이 있어요. 저는 작가의 손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독자의 손도 중요하고요. 손이라는 게 책하고 떨어질 수 없잖아요. 이 모든 것을 만들어 낸 전지전능한 신과 같은 존재인 손에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어요.

김소영  전지전능한 손으로 만들어 낸 세계, 결국 허구라는 얘기네요. 이수지  그렇죠. 김소영  이 책뿐 아니라 선생님 작품에서 독자에게 책이 허구임을 드러 내 보이는 순간이 종종 나와요. 그러고 보면 선생님은 책이 갖는 제약을  활용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수지  네, 그게 재밌어서 책을 하는 거니까요.(웃음)

김소영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는 무대 장치를 노출하고, 심지어  무대가 있던 벽난로를 청소하는 장면이 나오죠. 진공청소기의 모습이 피노키오를 연상시켜서 재미있었어요. ‘이게 다 농담이야.’ 하는 것 같고요.  삼 부작에서 책이 접히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신 것도 그림책 작업 의 가장 큰 골칫거리를 과감하게 이용하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수지  그게 농담으로 받아들여지니 다행이네요. 『이수지의 그림책』 에도 썼지만, 처음 경계를 이용하는 책을 만들었을 때 반응이 좋지만은 않 았어요. 미국 출판사의 담당 편집자조차 이렇게까지 해야겠느냐고 할 정 도였으니까요. 그래서 열심히 설득을 했죠. 사람들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 끼고 거기에서 이야깃거리가 생길 때 재미있어지는 거라고요. 나중에는  그 편집자가 저한테 더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제안해 주더라고요.(웃음)

김소영  나아가 『이 작은 책을 펼쳐 봐』(Chronicle Books 2013, 비룡소 2013) 는 애초에 편집자가 먼저 제안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수지  네. 이 작품은 제시 클라우스마이어의 첫 책인데, 편집자가 책  속에 여러 겹의 책이 겹쳐지는 형식에서 저를 떠올리고 연락해 왔죠. 아시겠지만 이런 형식이 책으로 만들기에는 굉장히 골치 아프잖아요.

김소영  제작부에서 싫어하죠.(웃음)

이수지  그러니까 출판사에서 먼저 제안하면 고맙죠.(웃음) 이 편집자는  제가 뭘 하고 싶어 하는지 간파한 거예요. 이 책이 보스턴 글로브 혼 북 상을 받을 때 제가 시상식에 못 가서 편집자가 대신 수락 연설을 했는데 마 치 저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서로 만난 적도 없고, 이메일로만 얘 기한 사이였는데요. 진심으로 감동을 받았어요. 『이 작은 책을 펼쳐 봐』는  뼈대만 있는 상태에서 편집자, 디자이너, 작가, 화가가 서로 이야기하면서  말 그대로 ‘만들어 간’ 책이에요. 특히 글 작가와 제 사이를 편집자가 교 통정리 해 주었는데 솜씨가 정말 예술이더라고요.

김소영  그게 편집 일의 묘미죠.(웃음) 이 책은 독자가 책 안으로 들어갔 다가 나오는 방식이 아주 섬세하게 조율되어 있어요. 제일 큰 거인이 제 일 작은 책을 읽을 수 없어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설정도 재미있어요.  글과 그림을 한 사람이 했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형식과 내용이  잘 맞아떨어져요.

이수지  처음에는 단순히 여러 사람들이 나와서 책을 읽고 들어가는 이 야기였어요. 그런데 그런 형식이라면 독자를 제일 깊숙한 장면으로 끌고  가기까지 이야기의 힘이 정말 강렬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아이디어 를 냈죠. 서로 연관성이 없던 등장인물들을 우리에게 친숙하고 이야깃거 리가 있는 동물로 바꿨어요. 거기서부터 아이디어가 이어졌죠. 마지막에  거인이 나올 테니까 처음에는 아주 작은 무당벌레로 시작하고, 무당벌레 니까 책은 빨간색으로 하고, 이런 식으로 그물 짜듯이 이야기를 만드니까  재미있을 수밖에요. 책 속에서 만나는 동물들이 서로의 물건을 바꾸는 장 치나, 앞면지는 모노톤인데 뒷면지는 컬러풀한 설정을 통해 책을 읽은 뒤 에 더 풍부해지는 세계를 보여 주고 싶었어요.

김소영  파란 손가락만 등장하는 거인을 여성으로 설정한 데에도 이유 가 있었나요?

이수지  남성 캐릭터는 이미 아주 많으니까요. ‘거인’이라고 하면 떠오 르는 스테레오타입을 피하고 싶었죠.

제약 때문에 흥미로운 도전

김소영  『이 작은 책을 펼쳐 봐』는 조형성이 도드라진 책이에요. 오늘  주제인 삼 부작은 별다른 장치는 없지만, 보이지 않거나 무시되던 경계를  도드라지게 함으로써 입체성이 생겼고요. 이런 점은 선생님께서 이전에  하셨던 북 아트 작업과 연관이 있을까요?

이수지  네, 많죠. 책을 만들 거면 책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일 을 하고 싶었어요. 저는 매체 자체가 작품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 각해요. 그러니까 제 작업은 ‘내가 왜 종이를 선택했는가.’에서 시작하는  거죠. 어떤 재료를 제일 좋아하느냐는 질문은 사실 정말 이상해요. 그림책  작가로서 저는 모든 재료를 좋아하고 책에 따라 재료가 달라지는 것뿐이 거든요. 제가 그림책을 좋아하게 된 이유 중 하나도 계속 변신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문이 열렸다가 닫히고, 펼쳐졌다 한순간 꿈처럼 사라지는 책 만의 세계가 참 근사하다고 느꼈죠.

김소영  북 아트에는 어떤 계기로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이수지  우연히 누군가의 책장에서 북 아트 작품을 보고, 세상에 이렇 게 다양한 책이 있다는 걸 알았죠. 심지어 그걸 공부하는 학교도 있다는  걸 듣고 잘 모르는 채로 영국 유학을 갔어요. 가서 보니까 다른 사람들도  잘 모르고 왔더라고요. 공통분모는 책이라는 것 딱 하나밖에 없고, 심지어  제가 그림을 그리면 신기해할 정도였으니까요. 그 상황이 재미있는 한편 으로 딱 일 년이라는 주어진 시간 안에 뭔가를 해야 한다는 제약도 있었 어요. 그 덕분에 앨리스를 건졌죠.(웃음) 그때 영어를 ‘겨우’보다 조금 더 할 줄 아는 수준이라 제 자신이 앨리스가 된 기분이었거든요. 그래서 앨리스를 모티프로 한 책을 만들어 봤어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텍스트를 영어로 쓰고, 그 위에 제가 번역한 한국 어를 겹쳤죠. 알파벳과 한글 텍스트는 길이도 다르고, 겹친 데서 오는 아 름다운 면이 있었어요. 그때 인용한 부분이 앨리스와 애벌레가 서로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장면인데 그 장면의 부조리함이 제 상황과 맞아떨어지면 서 재미있었죠. 간단한 책이지만 제게는 의미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김소영  책이라는 매체의 특성에 대해 얘기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떠 오르는 질문이 있어요. 그림책 앱이라는 새로운 세계가 있잖아요. 당장 종 이책을 대체하지는 않겠지만 많은 신인 작가들이 새로운 장으로 생각하 고, 그걸 염두에 두고 종이책 작업을 하기도 한다고 해요. 선생님은 책이 라는 매체가 디지털 시대에 어떻게 대응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이수지  각 매체에 적합한 형식이 있다고 봐요. 그걸 찾는 사람이 그 시 장을 선점하겠죠. 그림책을 스캔한다고 해서 전자책이 되지 않는다는 건  다들 동의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2010년 서울국제도서전에 온 에르베 튈 레가 한 얘기가 인상적이었어요. 그때 『책 놀이』(루크북스 2010)라는 책을  어린이들과 함께 읽었는데, 점을 손가락으로 누르면 다음 페이지에서 그  점만 색깔이 바뀌어 있거나 하는 식의 놀이책이거든요. 아이패드로 노는  것과 비슷하죠. 그래서 제가 질의응답 시간에 이 책을 앱으로 만들 생각 은 없느냐 물었더니, 관심은 있는데 자기 아이디어를 제대로 구현할 사람 을 아직 못 만났다고 하더라고요. 몇 년 후에 앱이 나온 걸 봤어요. 단순한  아이디어인데, 앱에는 나름대로 책이 해 줄 수 없는 게 있더라고요. 이를 테면 점을 눌렀을 때 불꽃처럼 타오른다거나 거친 붓 자국을 살리면서 거 기에 어울리는 소리를 가미한 것이 아름다웠어요. 작가가 만족스러웠을  것 같더라고요. 이렇게 그림책을 단순히 옮기는 게 아니라, 그 매체에 가 장 적합한 형식으로 새로 태어나게 하면 신세계가 펼쳐지겠다 싶죠. 훌륭한 작업과 부족한 작업이 있을 뿐, 매체가 훌륭하기 때문에 작업이 훌륭 해지진 않는 거죠. 저만 해도 아직 책을 먼저 만든 다음에 ‘이걸 어떻게  옮길까?’라고 생각하는데 다음 세대는 처음부터 그 매체로 생각하는 세대일 테니 지금과는 아주 다를 것 같아요. 흥미진진하죠.

김소영  책이라는 게 참 사람을 수고롭게 해요. 책꽂이에서 꺼내서 보 고, 앞뒤를 파악하고, 알아차리지 못한 게 있으면 되돌아가서 보기도 해야 하고요. 『그림자놀이』에서 슬며시 일어난 변화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 다가, 문득 돌아가서 확인해야 하는 것처럼요. 이 수고가 독자에게 주는  즐거움이 분명히 있는데, 앱이라는 새로운 매체에도 그 자리를 채울 아이 디어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선생님 말씀처럼 누군가 처음부터 이 매체 를 장악해서 작업한 결과물을 독자들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림이라는 공통 언어

김소영  삼 부작 그림책을 본 어린이들은 “진짜 ‘그림’책이네요.”라고  반응하곤 해요. 글 없이 그림으로만 이루어졌으니까요. 그런데 겨우 글자 를 깨친 어린 독자들은 그림을 따라 하고 떠들며 아주 시끄럽게 책을 보 는데, 글자에 익숙한 고학년 어린이일수록 조용히 읽는다는 걸 발견했어 요. 글자를 아니까 글자가 없다는 것의 의미가 뭔지 생각을 한번 해 보는  거죠. 글자가 없다는 사실을 즐기는 거였어요. 선생님은 그림책에서 글자 와 그림이 어떤 관계라고 생각하세요?

이수지  저도 계속 질문하면서 알아 가는 중이에요. 영미권에서는  ‘wordless picture book’이라고 하고, 『파도야 놀자』가 브라질에서 상을 받 을 때 보니 그곳에서는 ‘image-book’이라는 표현으로 분류되더라고요.  얼마 전에 이탈리아 토리노 북 페어에 갔었는데, 거기에서는 제 책들을  ‘silent book’이라고 부르고요. 일견 그럴듯하게 들리면서도 그 표현이 놓 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실은 오히려 글 없는 그림책이 더 ‘시끄러운’ 측면이 있죠. 아이들이 많이 이야기하게 만드니까요. 어린이가 혼 자 읽을 때도 그렇지만, 어른이 읽어 줄 때는 읽어 주는 사람의 태도가 정 말 중요하거든요. 어린이가 들어올 공간을 만들어 주고, 아이들의 이야기 를 들어 주어야 하고요. 읽어 주는 사람의 태도에 어린이들이 압도되면  그 책은 이미 반은 성공한 셈이에요. 제 책이 그렇게 이야기를 끌어내는  촉매라면 좋겠어요. 그런가 하면 말씀하신 것처럼 조용히 읽으면서 자기 가 침묵 속에 있다는 것을 음미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고요.

김소영  『이수지의 그림책』에 『파도야 놀자』를 읽은 자폐 아동 얘기가  실려 있어요. 미국 어느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의 제안으로 조용히 책을 읽 었더니 자폐 아동이 다른 아이들이 웃는 장면에서 똑같이 웃음을 터뜨렸 다는 사연이 감동적이었어요.

이수지  저도 정말 감동받았어요. 의도적인 침묵의 효과가 극대화된 순 간이겠죠. 한편으로 저는 글자 없는 그림책이 ‘모 아니면 도’라고 생각해요. 너무  어렵거나 반대로 뻔해지기 쉽죠. 매 순간 독자를 붙잡아 놓으면서도 자유 를 주고, 가능성을 내포해야 되는 과정을 그림만으로 끌어간다는 게 참  힘들어요.

김소영  저는 책이라는 세계가 어쩔 수 없이 성인 중심으로 구성되다  보니 언어 중심주의가 넓게 퍼져 있다고 생각해요. 언어로 설명되는 것이  수준 높은 지식인 것처럼, 좋은 감성인 것처럼 설명되는 경향이 있다고  할까요. 그런데 선생님은 『이수지의 그림책』에서 글자 없이 모든 것을 그림으로 표현해 보고 싶다고 하셨더라고요. 제가 이해하기에 이 말씀은 글 을 없앤다기보다 그림을 새로운 언어로 사용하겠다는 뜻으로 읽혔어요.  그림이라는 언어를 이용해서 이야기를 만들겠다고 하신 거죠. 그렇게 되 면 국적이나 연령, 글자를 알고 모르고를 떠나 공통의 언어를 갖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야말로 모두가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이 되겠지요.  마지막으로 선생님께 영감을 주는 존재에 대해 여쭤보고 싶어요.

이수지  아이들이에요. 보편적인 아이들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가까이서 보는 저희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배우죠. 꼭 어린이책을 만들어 서라기보다 저는 ‘아이다움’이 정말 좋아요. 다른 장르에서 일하는 예술 가들도 마찬가지일 텐데, 뭔가를 만드는 행위는 어린이다운 마음이 없으 면 불가능해요. 사실 지난밤에 아이와 한바탕했어요.(웃음) 숙제랑 준비물 때문에 잔소 리를 했죠.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이가 무슨 일 있었냐는 듯이 다  잊어버리고 즐거운 얼굴이에요. 덕분에 저도 어제 미안하다고 얘기할 수  있었고, 그러고 나면 세상이 진짜 아름다운 거예요. 그게 아이의 밝은, 해 맑은 얼굴에서부터 가능한 거죠. 가장 어려운 순간에 아이의 그런 맑은  마음에서 도움을 받아요. 그리고 놀이하는 마음. 작업하다 안 풀릴 때면  그 기분으로 돌아가려고 애써요. 그게 저한테는 큰 도움이 되죠. 그런 느 낌을 항상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 느낌을 좋아하는 마음이 작가에게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독자에게도 그런 요소가 있을 거예요. 그런 독자가 그림책을 좋아해요. 거기서 만나는 거죠.

김소영  그런 느낌을 좋아하는 작가와 독자가 그림책을 통해 만난다는  말씀, 공감합니다. 가을에 나올 책 『선』도 그런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긴 시간 감사합니다.

이수지  고맙습니다.


이수지는 독자가 이야기에 집중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작가는 때로 “가능성을 닫으면서” 가야 한다고 했다. 너무 많은 해석의 여지를 두어 독자 가 옆길로 새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무언가를 표현 하는 작가의 행위는 나머지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막 상 창작자의 말로 들으니 새삼 머리가 차가워졌다. 『그림자놀이』에서 스 위치를 내리는 “딸깍!”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작가는 경계를 만들고 지우고 넓혀 왔다. 이번에 말하는 경계는 양쪽  페이지 사이의 물리적인 선만이 아니다. 꿈과 현실의 경계, 글과 그림의  경계, 작품과 독자의 경계. 인터뷰 덕분에 미리 엿본 신작 『선』은 그 경계 가 다시 새로워지는 작품이었다. 역시나, 이수지에게 경계 삼 부작은 본편 이자 예고편이었던 것이다.





by 힌토끼 | 2017/09/08 14:36 | 그림책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tokigool.egloos.com/tb/5896871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