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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탄하는 법

일요일 아침, 밖은 영하 15도이지만 집안은 고요하고 따뜻하다. 아이들은 각자의 구석을 찾아들어가 저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나도 동그랗게 몸을 말고 앤 라모트의 “쓰기의 감각”을 읽고 있다.


나는 솔직히,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당신이 경외심을 갖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뭣 하러 글을 쓰는가? 왜 여기서 이 고생을 하고 있단 말인가?

경외심을 세상에 대한 감탄, 그 속에 존재한다는 감각, 세상을 향한 열린 마음이라고 생각해 보자. 그게 아니라면 세상을 비웃고 세상과 등지는 방법도 있다. 우연히 들여다본 다른 사람의 영혼에서 아름다움이나 통찰을 발견한 순간처럼, 당신을 일순간 전율케 한 시나 산문을 읽었던 때를 떠올려 보라. 갑자기 모든 것이 서로 통하는 것 같거나, 적어도 어떤 의미를 띠는 것만 같은 순간, 나는 이것이 작가로서 우리의 목표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이러한 경외의 감각을 되찾아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고, 그 새로움에 허를 찔리고, 종내는 자신을 가두던 좁고 제한된 세계를 부수고 나올 수 있게 돕는 역할 말이다.


문장부호 “!”가 떠오른다. 요즘같이 창의력 강박이 가득한 세상에서는 아이를 키울 때 늘 “?”를 강조하지만, 사실 창의력은  “?”만큼이나 “!”가 필요한 것 아닌가 싶다. 느낌표의 형상은 뭔가 깨달음을 얻은 자의 모습이 있다. 깨달음 직전에는 감탄이 있다. 이 세계에 대해 감탄하는 법을 알아야 질문도 생기는 것 아니겠나.


둘째 아이 세 살 즈음인가, 산책을 나갔는데 문득 하늘을 올려다본 바다가 기쁘게 소리쳤다.

“엄마! 저것 봐! 구름이 불에 타고 있어!”

해가 구름에 가려서, 큰구름의 가장자리가 하얗게 빛나고 있는 것을 보고 했던 말이다.


어린 아이들은 매 순간 신기하고 놀라운 것을 찾아낸다. 찾아낸다기보다 그저 발에 걸리는 모든 것이 다 놀랍고 재미있다. 신기한 세상에서 이것 저것 아는 것을 총동원해서 연결시켜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놀랍다. 모든 아이들은 예술가이다.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하면 또 꼭 이렇게 덧붙이는 사람이 있다. 그건 아이들이 세상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맥락없이 표현하는 것이고, 그것을 새롭다고 이름붙이는 것도 어른들이며, 결국 어른들의 낭만적 미화일 뿐이라고.


*


한참 연애하던 무렵, 친구들과 여럿이 독일 베를린에 여행을 갔다가 대학 선배의 집에서 묵었다. 독일 여행은 처음이었고, 베를린의 거리와 문화는 새로웠다. 그런데 며칠 같이 놀러다니면서 내 남자친구를 유심히 보던 선배가 문득 말했다. “너는  정말 신기한 게 많구나!”

그때 처음 깨달았다. 내가 왜 그 남자친구를 좋아했는지. 막연하게 느끼고 있던 것이었는데, 그 선배의 말을 듣고 보니, 그는 정말 신기해 하는 것이 많았다. 그는 새롭게 부딪히는 모든 상황을 아이처럼 궁금해하고, 발견하고, 감탄했다. 그리고 딱히 자신이 뭔가를 모른다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거나 감추지도 않았다. 다 그렇고 그런거지, 그건 당연한 거지, 난 다 알고 있어, 그건 원래 그런거야 라는 태도로 넘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게 그의 살아가는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탄할 줄 안다는 것은 당신을, 상황을,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 볼 줄 안다는 것이다. 감탄하는 법을 안다면 다른 이에게 관대해진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그 감탄 속에 머무르는 행복감을 즐길 줄 안다는 것이다.


아이건, 어른이건, 감탄은 삶의 태도이다. 감탄하는 삶은 세상을 놀이터로 만든다.


*


앤 라모트의 글을 읽다보니 이런 저런 생각들이 떠오른다. 경외심이란 것은 정말이지 작가의 중요한 자질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경외심을 갖는 법 따위를 배울 수는 있는 걸까? 어느 찰나, 무엇인가에 감탄하는 순간, 세상의 진실을 얼핏 본 것 같은 묘한 감정에 압도되어, 그것을어떤 식으로든지 표현하고 싶은 욕구, 내가 본 것을 다른 이에게도 보여주고 싶고 모른다면 알게 만들고 싶다는 욕구 따위가 작가를 만드는 것이리라. 어린 아이들의 말을 들어본다면, 아이들의 감탄에 감탄하게 된다. ‘경외심에 대한 경외심’이라 부를 수 있을 이것, 이것이 그림책 아닐까? 이것 때문에 내가 그림책을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데까지 생각의 가지가 뻗어나간다. 아이들의 눈과 마음에 감탄하는 법을 아는 사람들이 그림책 작가가 되고, 그 감탄의 결과물인 그림책에 감탄하는 법을 아는 사람들이 그림책의 독자가 되는 것 아닐까?


*


흔히들 어른이 되면, 궁금한 것도 없어지고, 뭐 그닥 새로운 것도 없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사람들 만나도 맨날 똑같은 이야기. 했던 이야기 하고 또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어디 가서 저러고 있는 것 아닌가 금즉 놀라는 매일일 수도 있겠지만,

문득 차가운 겨울 창문 밖, 저 위엣 집 촌장님 댁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보면서 또 아지랑이처럼 너울너울 아름답네. 생각하고, 꼬리깃 새파란 떼까치들이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것을 보면서 의자 깊숙히 몸을 묻는다. 시골로 이사와서 내가 매 계절 느낀 자연에의 경외감을 반추해보면, 꼭 어른이 되어서가 아니라, 살면서 그저 감탄의 대상이 이동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몸 속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떨림, 아름답고 시린 겨울 가지들을 보면서.


by 힌토끼 | 2019/01/20 07:40 | 그림책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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