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s the use of a book without pictures or conversations?"said Alice.
by 힌토끼
메모장
그림+책을 만드는 힌토끼의 잡다한 이야기
suzyleebooks.com
카테고리
전체
100일의 글 쓰기
그림책
그림+책
바캉스 프로젝트
함께 만드는 가이드
산+바다
토끼굴 일상사
letters
번쩍
poignant
정답은 없다
작가가 작가에게
산+바다의 책장
나를 만든 책
info
Bloomington
Singapura
놀이
예술교육
전시
흰토끼프레스
미분류
최근 등록된 덧글
바다에게 읽힌 펄레케에..
by K at 10:08
이거이거.... 어케어케..
by 힌토끼 at 12/02
http://sukuland.com..
by K at 12/02
오오오 이런 비하인드스..
by K at 12/02
작가님 ~ 작가님 홀로그..
by 조프로 at 12/01
고생 많으셨어요~~ㅎ..
by 조프로 at 12/01
혼자 그림자 놀이 꺼내서..
by 솔방울 at 11/30
그림 밖으로 튀어나온 그..
by 솔방울 at 11/30
ㅎㅎㅎ뤼스펙트해서 새..
by 조프로 at 11/28
아 ㅎㅎㅎ 그래서 흰색 ..
by 조프로 at 11/28
최근 등록된 트랙백
이전블로그
more...
이글루 파인더

rss

skin by 네메시스
14일차_P3_잡글: 다음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아침에 소식을 들었다.

*

안녕하세요 초방 신경숙의 큰딸 정소효입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13일 저녁6시경 다음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어머니의 뜻에 따라 조문없는 작은 가족장으로 인사드리려 합니다.
화환과 부의금도 정중히 사양합니다.
모두에게 평화가 함께 하시길 바라며,

*

예순밖에 안 되셨는데. 주변에도 전혀 이야기를 안 하신 모양이다. 진작 조금씩 생을 정리해두신 모양이었다. 작년 스틸로 강연 때 오셨었는데, 그때 정말 짧게 나눈 인사가 마지막이 되었다.


이 글은 신경숙 선생님이 어느 강연에서 하신 이야기들인가보다. 메신저에 올라오는 조문들 속에서 본 글을 갈무리 해 두었다. 글의 일부만 올려둔다.


*


신경숙 선생님의 말은 울림이 컸다. 조용히 스며들어서 퍼져나갔다.
내 마음속에 "그림책"이라는 어떤 상이 맺히게 되는 데는 직접적으로 혹은 먼 발치에서 울려온 선생님의 영향이 컸다.

모든 자식은 제 잘난 줄 알다가 장성하여 문득 깨닫는다. 내 말은 내 말이 아니었고, 나는 스스로 큰 것이 아니었다.

외국에서 그 시기를 보내지 않았다면, 멀리 살지 않았다면, 어떤 식으로든지 초방과 더 관련 되었을 것 같다. 초방은 그맘 때 좋은 예술가들을 끌고 오는 자석과도 같았다. 그 안의 여유, 이해할 수 없는 느긋함 따위가 지금은 더 큰 보석처럼 느껴진다. 나는 주변에서 지켜봤을 뿐이지만,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간간히 국제도서전에서 뵙고, 국제 활동의 무대에서 뵙고...파편적인 기억들 뿐이다. 뭔가 우리 clan은 아니야-라는 ^^;; 느낌이 서로에게 있었던 것 같지만, 나는 오히려 그래서 좋았다. 나는 그 분보다 한---참 아래지만, 그 분의 행보와 여러면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지적 감성을 느꼈다. 그렇게 느끼게 해주셨다.(그래서 신경숙"씨" 사건이 있었던 것일지도ㅎㅎ) 서로 다르지만, 그런 서로를 흥미롭게 지켜본다는 태도가 좋았다. 모르겠다. 까마득한 후배인 나를 지켜보는 그 분의 생각은 달랐을 수도 있지만.

한 번, 아니 두 번인가? 초방으로 일부러 부르셨던 적이 있다. 밝고 따뜻한 공간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왜 부르셨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요즘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이것저것 물으셨다. 무언가 이야기 말미에 수지씨에게 이야기 할 것이 있는데, 차차 할게요.라고 애매하게 마무리 하셨던 기억만 난다. 그게 무엇이었을까? 이제는 알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림책"을 넘어 선 어떤 것--어떤 예술가의 커뮤니티, 좀 더 자유롭고 커다란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기쁜 마음으로 끄덕였던 기억은 남아있다.

나는 늘 소속도, 스승도 없어서 자유롭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가끔씩 초방의 커뮤니티는 부럽기도 했다. 찾아갈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좋겠다 싶었다. 찾아가고 싶은, 이야기 나눌 수 있을... 이쪽 동네의 내 마음 속의 어른이 떠나셨다. "다음 여행"을 떠나셨다.


*

신경숙 선생님의 글 전문:
2020. 9. 22


신촌,
연세대학교 앞, 기차길에
오고가는 기다란 기차가 엇갈리며 지나간다
근처 10층 건물에서
물끄러미 그 둘을 바라보며
이어지는 생각을 떠올린다
신촌,
대학시절을 보내며 지나간 공간들,
학교, 기도실, 학생회, 촛불예배,
엄혹한 시절에 세파를 피해 조용히
강의실에서
김흥호 선생님에게서 다석을 알고
여성학자들로부터 여성주의를 듣고
공자와 소크라테스를 만나고
예수만을 알던 나의 세포를 열어간다
한국인_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나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라는 단순하지만
답이 멀리에만 있던 질문,
한국-조선-고려-신라-백제-고구려
그 길을 따라가면서
나는 '향연'을 만난다
소크라테스 언어로,
궁금한 주제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심포지엄
이후 나의 평생은 향연으로 이어진다

+

비행기는 서쪽 바다 끝까지
기차는 서쪽에서 다시 북쪽으로 향해 간다
그 모습들을 바라보는 이곳은
연세 세브란스병원 10층
신경외과 입원 병동 병실이다
2년전 알게된 폐암 뇌전이가 나를 이곳으로 데려왔다
나는 마지막에 가까운 길일지도 모를
그런 여정에서
마치 크루즈여행과 같은 분위기로
넓고 그윽한 하늘을 마주하고
그 아래 도시의 빌딩들
또 그곳을 누비는 자동차들의 움직임은
어제의 진한 노을,
깨질듯이 진한 오렌지 색을
받아 빛나는 여의도 63빌딩 파이넨스 트윈타워가
저녁 늦게까지 발열하는 것을 보았다
정확히 서향을 한터라 그랬을까
서해 바다를 향한 그 서너건물만이
그날 마지막 햇볕으로 자신을 발열하고
해가 진 밤에는
빨간 조명으로 이어가며 존재를 과시했다
멋진, 우주선의 포스였다

나는 60살의 죽음은
영혼의 신비로운 힘, 그 길의 엄연함을 믿기에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18년 7월 폐암4기 선고를 받고
그때 3년반 모시던 노모와의
일상을 정리하며
엄마 마지막까지 보살피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아쉬움
그외에는 거의,
나의 생의 마감을 기꺼이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일체 알리지 않은 것은
그 이후의 대화가 병세 안부만이기를
바라지 않았고,
일상의 이어오던 이야기로 이어지길 바랐고
평시처럼 의논도 하고 그러다가
언젠가 나의 마지막 소식을 바람결에 알게되길 바랬다
마음은 가까워도
연락을 주고받은지 오랜 동지들도
그저 내가 잘 살고 있으려니 하길 바랬다
장례도 생략하고 꽃과 함께 화장하여
소박한 자리에서,
부모님 곁에서 휴식하길 바랬다

지금도 그런 마음 여전하지만
나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친구들, 동지들을 위해
덤덤하게 있는 그대로의
나의 이야기를 남기고자 마음 먹었다

제2의 고향
하늘로 이어지는 신촌 풍경을 매일 매시간
바라보다 절로 연필이 굴러갔다
첫 단어는 신촌,
신촌은 나의 제2의 고향이었구나
나는 그곳에서 떠나가는구나
30년간 애정했던 초방의 고향이며
초방을 이어가는 유일한 열매
딸 쌍동이 자매의 고향이자
성장한 마을이고
그 아빠를 대학 1년 10월에 만난 곳도
신촌이고
대학 초년생을 시작한 곳이 신촌
나의 40년을 담고
나의 서른에 시작해
초방이 서른이 된, 2020
그 12월을 맞이하는 길목, 시월초
나는 나의 마지막 여정을 짐작한다

나의 영혼은 평안하고
너무 늦지않게 떠나가는 것도 괜찮고
큰일을 하지 않은 사람이지만
나름 본인과 가족들과 지인들과
신념에 따라 한걸음씩 지나온 것에
큰 회한 없음에 감사한다.

신념의 단호함 때문에,
의미와 재미를 주관적으로 따져온 나의 기준 때문에,
또 주저하거나 약한 망설임 때문에
모르는 사이 상처받은 사람들에겐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빈다
마지막까지 위로의 인사를
남기고 싶다
글 솜씨는 없고
주절임 많은 수다쟁이
그 기질로 이말저말 하며
내, 살아온, 떠나가는, 사람의 기록을 남겨본다


2020. 10. 1

원문 링크

picturebookflower_SHIN_Kyoungsook.pdf.pdf











by 힌토끼 | 2020/11/14 14:40 | 100일의 글 쓰기 | 트랙백 | 덧글(5)
트랙백 주소 : http://tokigool.egloos.com/tb/5943147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retoy at 2020/11/15 00:45
진정한 어른이라는 느낌
이번 생애 많은 걸 쏟아 붓고 가신다는 느낌
그리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안개속 큰 별과 같은 빛을 잃어
막막함이 클거 같은 느낌

가시는 길이
남은 사람들에겐 인사를 제대로 못해
진한 그리움을 남길듯

초방을남기셨구나
Commented by 힌토끼 at 2020/11/15 08:45
그러게. 많은 것을 남기셨어. 떠나시고 보니 더욱 그렇네.
Commented by 조빵 at 2020/11/15 08:51
초방 옆에 진짜 유명했던 분식집이 있었거든요 거기서 거하게먹고 초방에 아무것도 모르고 갔었는데 분위기가 참 특이했었어요 난방때문인지 향때문인지 엄청 따뜻했던 기억이 있었는데.. 저도 투덜대지 말고 주어진 일에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벌써 4명 모았다요! ㅎ(수지씨도 저를 비롯한 많은 그림책 작가들에게 마음속 큰 별이실듯해요.ㅋ총무님이 자꾸 사장님한테 까불지 말라하네요.)
Commented by 힌토끼 at 2020/11/15 09:57
혹시 조빵이 초방에서 온 거야? 아으 의식의 흐름...

그래. 나도 "따뜻"했다는 기억이 강해. (그날 추웠나...) 그런데 4명 모은게 뭐여. 아...혹시...BIB?
Commented by 조빵 at 2020/11/15 10:19
학교때 제 별명이 좆빵ㅋㅋㅋ착한 애들은 은빵 .이렇게 불렀어요 ^^;;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