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s the use of a book without pictures or conversations?"said Alice.
by 힌토끼
메모장
그림+책을 만드는 힌토끼의 잡다한 이야기
suzyleebooks.com
카테고리
전체
그림책
그림+책
바캉스 프로젝트
여름책
강연
100일의 글 쓰기
함께 만드는 가이드
산+바다
토끼굴 일상사
letters
번쩍
poignant
정답은 없다
작가가 작가에게
산+바다의 책장
나를 만든 책
info
Bloomington
Singapura
놀이
예술교육
전시
흰토끼프레스
미분류
최근 등록된 덧글
퉁명스럽지만 상냥한 사..
by K at 10/08
오.. 작가님도 2차 아프..
by 주사바늘 at 10/08
아.. 모니카가 독재인면..
by if 내가 멘티라면? at 10/05
꺄악 모니카는 독재던데?
by 힌토끼 at 10/05
자이언티까진 아니구요^..
by if 내가 멘티라면? at 10/04
개코 x 모니카
by if 내가 멘티라면? at 10/04
아구야ㅎㅎㅎㅎㅎㅎㅎㅎㅎ
by if 내가 멘티라면? at 10/04
누구를 알고 있는지 모..
by 힌토끼 at 09/29
나 33번이야? 그렇구나. ..
by 힌토끼 at 09/26
이런~이런~. 홈피에 ..
by 이런이런 at 09/25
최근 등록된 트랙백
이전블로그
more...
이글루 파인더

rss

skin by 네메시스
70일차_P3_잡글: 매체와 매체 사이
언젠가 내 책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제작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는데 당시에 집중할 여력이 없어 다음을 기약했다. 다시 담당자가 이런 답장을 보냈다.
"...책을 앱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작가님의 염려나 의중은 충분히 사료됩니다"

일정 때문에 어렵다는 단순한 사양이었는데, 다소 과한 답장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전에 다른 작가들이 그런 태도를 보였던 걸까? 부정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긍정적이다. 단지 책과 앱은 서로 '다른' 매체라고 생각하고, 그 '다름'을 극대화하는 좋은 기획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고는 있다. 

예전에 에르베 뛸레가 서울 국제 도서전에서 강연을 했을때 그의 책 "Un Livre"은 이미 그대로 e-(picture)book으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는데 관심이 있는지 질문했었다. 그는 "관심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나를 매료시킨 제안도, 제작자도 없었다. 멋진 제안이 있다면 해 보고 싶다."라고 대답했다. 다른 매체로의 단순 번역이 아니라면, 나를 매료시킬만한 도약이라면 다른 매체를 향해 열려있는 것이 창작자다.

각 매체에 적합한 형식이 있을 것이고, 그걸 찾는 사람이 그 시장을 선점하겠지. 그림책을 스캔한다고 해서 전자책이 되지 않는다. 훌륭한 작업과 부족한 작업이 있을 뿐, 매체가 훌륭하기 때문에 작업이 훌륭 해지진 않는다. 그래도 새로운 매체에 걸쳐있다는 나도 아직 책을 먼저 만든 다음에 ‘이걸 어떻게  옮길까?’라고 생각하는데, 다음 세대는 처음부터 그 매체로 생각하는 세대일 테니 지금과는 아주 다를 것 같다. 흥미진진하다.

2011년, 인도 뭄바이에서 Creating Content(ment) for Children 컨퍼런스가 사흘에 걸쳐 진행되었다. 둘째 날, Peter Hunt의 세미나가 있었다. 제목은 "Brave New Worlds- Children, texts and the New Media". 현재 우리는 책의 권위 (더불어 작가의 권위)의 시대에서 interactive media의 시대로 넘어가는 transitional period에서 살고 있다. 자신은 이 시대를 살며 그 모든 현상을 똑똑히 볼 수 있어서 매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기존의 독자와는 아주 다른 새로운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데, 여전히 컨텐츠를 쥐고 있는 것은 새로운 미디어를 잘 모르는 "어른"들이라는데서 오는 문제점들을 짚었다.

다음이 내 차례라 이야기는 흥미롭게 연결 되었었다. 발표 앞머리에 "방금 오래된 세대와 새 미디어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를테면 '새로운 세대'로서 오래된 미디어인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며 시작했다. 세미나 후, 삼부작 책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나를 초대했던 Kirti Trivedi 교수는 인도의 답보적이거나 상업성에 휘둘리는 그림책 문화에 꼭 내 책들을 소개하고 싶다고 했었다.

다음 차례는 Madhuri Purandare (인도의 작가/일러스트레이터)였는데, 마라티 언어로 발표해서 알아들을 수가 없어. 나중에 옆 사람에게 부탁했다. 다소 왜곡이 많은 요약인 듯 했지만 "왜 인도인들은 스스로의 언어와 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발전시키려 노력하지 않고 외부의 새로운 것들에 탐닉하는가?"라는 주제였다고 했다. 이를테면, 앞서 피터와 내 프리젠테이션은 아직 인도에서 논의하기 이른 남의 주제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낯익은 슬로건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것을 보여주자/ 남의 것 자꾸 힐끗 거리지말고 대단한 우리 자신부터 살피자!라는 한 편과, 세계가 어찌 돌아가는지, 요즘 최신 담론과 유행이 흥미롭다, 뒤쳐지면 안 된다!가 대놓고 부딪혔다.

마찬가지로, 세번째 날 컨퍼런스 마지막 세션은 인도의 대표적인 출판사 대표들의 발표가 이어졌는데, 정말 극단적으로 다양한 인도 출판사들의 면면을 볼 수 있었다. 세미나 스피커 중엔, 가난에 허덕이는 '부족'의 아이들을 구제하는 무상교육을 해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경제적으로 넉넉한 지식인들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대안학교 운영자도 있었다. 어떤 극빈 지역에는 전기도 안 들어오는데, 거기에 대고 e-book 논의를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닌가는 주장도 있었다. 이렇게 편차가 큰 이야기를 사흘내내 전방위적으로 나누는 컨퍼런스 자체도 인상적이었지만, 그곳 인도는 정말 거대한 용광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나게 산만하고 동시에 엄청나게 생생했다.

인도의 경우는 다소 극단적이긴 하다. 하지만, 피터의 말마따나 지금이 '변환의 시대'라고 하더라도, 인도 뿐 아니라 모든 논의는 아직은 아주 기초적인 수준이며, 디지털 시대에 나오는 결과물들도, 적어도 어린이와 관련된 컨텐츠 논의에서 그다지 의미있는 큰 변화가 보이지는 않는다.

싱가폴에 머무는 동안 NTU (난양공과대학)에서 열린 Motion Arts Tradition and Animation in Asia 세미나를 들은 적이 있다. 기획자인 키르티 교수는 기조 발언에서 매체의 변환기에 대해 이야기 했다. Illuminated manuscript의 시대에서 offset printing의 대량생산 체계로 넘어오면서 책의 퀄리티는 현저하게 떨어졌다. 어떤 매체의 변환기에는 발전이 있으면서도 그 중심의 본질. 그 질은 후퇴한다. animation도 마찬가지인데, 이전의 '움직임'의 전통-춤과 드라마-가 새로운 매체를 만나면서 그 질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통찰력 없는 사람들은 새로운 테크닉만 배우고, 전수한다. 대학에서도 기술에 매몰된 교육만 하고 있다며 이미 보유하고 있는 훌륭한 전통을 어떻게 애니메이션으로 연결시킬 것인가에 대해 핏대를 올렸다.

자칫 공허할 수도 있는 그의 주장은 실은 직전에 있었던 인도 전통춤 퍼포먼스로 인해 이미 설득 되었다. Madakini Trivedi의 Indian Dance 프리젠테이션은 압권이었다. 인간의 몸이 몇 가지 방법으로, 어떤 근육을 사용하여 움직이고 그것을 춤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차근차근 실연으로 보여주었다. 머리를 움직이는 방법만해도 아홉 가지가 된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결국 이것도 매체의 인식에 관한 이야기 아닐까 싶었다. 매체는 그저 이야기를 실어나르는 도구가 아니다. 인도의 24가지의 손동작 하나하나 의미가 다르고, 온 몸이 만들어내는 조합은 무궁무진하다. 무언의 춤은 보편성을 획득한다.


모든 미디어의 사이는 흥미롭다. 서로 미디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인식하고 징검다리가 되는 지점을 생각해 보는 것, 그것이 매체에 대한 인식의 시작이다. 모바일 앱을 만들어 파는 회사는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는,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키르티 교수의 일갈대로, 그저 아주 '후진' 결과물의 생산자가 될 뿐이다.





.


by 힌토끼 | 2021/01/09 09:00 | 100일의 글 쓰기 | 트랙백 | 덧글(4)
트랙백 주소 : http://tokigool.egloos.com/tb/5945201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와! at 2021/01/10 05:06
그 바쁜 일정을 소화 하면서. 이런 생각을 정리 하기도 힘들 었을탠데. 알지 못하는 가운데에서도 세상은 다양한 방식으로 돌아 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는.

매체 라는 말 ! 참 쉽게 쓰이지만 ,각각 적응 하는 데도 오래 걸린다는. 만들어 내는 사람은 늘 깨어 있어려고 노력 해야 하나 보다. 숙제 같은 느낌! 생생한 정보와 분석 ! 감사!
Commented by K at 2021/01/10 13:23
나는 디지털콘텐츠디자인을 전공했는데, 결국 책쟁이가 되었다는...역행의 아이콘 ㅎㅎㅎ 그런데 모든 미디어 중에서 가장 작가가 개입할 여지가 많은 것이 책이라 그랬던거 같아요.
Commented by 힌토끼 at 2021/01/10 20:29
으음. K가 강연했어야 하네. 전공까지 했으니. "디지털 콘텐츠 디자인"이란 전공명은 조목 조목 장대하네요.

맞네. 다른 미디어는 많은 사람과 많은 공정이 필요하지..
Commented by 치뽈리나 at 2021/01/10 21:37
다름이 만나는 지점에 창조가 있다는 건 알지만 디지털을 잘 몰라 문을 열지 못하고 책 속에 남아 서성이는 것 같아요. 디지털이 다가와 가능성을 보여주면 좋겠는데.. 그것도 기다리기만 하는 게으른 내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