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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일차_P1_물건들: 동물원
object: 동물원 더미북



"곰동산" 책을 만들고 나니, 동물원에 관한 그림책을 만들어 보고 싶어졌다. 동물이 없는 동물원.

이미 "동물원은 누구를 위한 곳인가?"에 관해서는 앤서니 브라운이 다 한 것 같았다. 게다가 런던 동물원에 실제로 가보니 앤서니 브라운의 "동물원"은 픽션이 아닌 다큐멘터리였다. 런던 동물원이 그대로 있었고, 책 안의사람들도 현실에서 고스란히 옮겨졌다. 그 곳에서 같은 감정을 느꼈던 나는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에 더욱 깊이 공감했다. 실제 존재하는 공간,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지표, 현장감이 주는 맥락이 힘이 있구나 싶었다. 런던 동물원은 그냥 이 분이 잡수셨구나.

나는 그냥 "동물원"이라는 공간 자체에 매료되었던 것이라 실은 런던 동물원이든 베를린 동물원이든 별로 상관없을 것 같았다. 일단은 이야기를 진행해 보기로 했다. 누구든 그런 경험 있을 것이다-분명히 엄마 손을 잡고 있었는데, 얼굴을 올려보면 다른 아줌마였던 기억. 우리 아이들도 어렸을 적에 다른 가족 근처에 서 있는 것을 몇 번 데리고 왔었다. 언젠가 우리 엄마도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분명히 가게 앞에 서 있던 내가 사라져서 그 상가를 다 헤집고 돌아왔더니, 잃어버린 그 장소에 서있었더라는 거다.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한 가족이 동물원에 갔다가 손에 든 풍선 때문에 잠깐 아이를 놓친다. 아이는 같은 장소에서 엄마아빠와 다른 풍경을 본다.

우선은 런던 동물원을 배경으로 한 장편 더미북을 만들었다. 그즈음 영국 학교의 일정이 끝나 영국을 떠났다. 한국 들어가기 전에 파리의 친구집에서 묵으며 한동안 지냈다. 지내는 동안 그림 파는 마켓에도 참가하고 내친 김에 프랑스 출판사 한 군데 보냈다가 바로 딱지를 맞았다. 동물원 더미북은 꼬르륵 진창으로 가라앉았다. 한국에 도착해서 계속 생각했다. 뭔가 부족하다. 그게 뭘까.

잠깐만. 스산함이라면 런던 동물원에 대적할 만한 곳이 있지 않은가. 서울 능동의 어린이 대공원. 어느 봄 날, 혼자 어린이 대공원을 어슬렁거렸다. 박정희 시대의 유산답게 콘크리트로 지은 거대한 코끼리 궁전 앞에 딱 멈췄다. 초록 한 뙈기 없는 나른하고 따사로운 봄날의 궁전, 그 옆을 줄지어 걷는 유치원 아이들, 김밥과 삼단 도시락을 푸는 아주머니들, 색색의 풍선, 먼지 냄새, 꽃 냄새, 새똥 냄새, 미아를 찾는 방송, 팔각정, 그 시간에 거기 있을 복장이 아닌 사람들, 종일 벤치에 앉은 노인들, 동물에게 주지말라는 과자 주는 가족, 잔디 보호 팻말 안에 앉아 소주 까는 아저씨들, 날아가 버린 풍선, 떨어트린 아이스크림, 깻잎머리 삼공주파, 동물 우리에 자꾸 뭔가를 집어던지는 아이들, 웃음 소리, 아지랑이....그리고 정작 그곳에서 사라진 동물들.

구체적인 공간속에서 저절로 잡다한 이야기들이 피어났다. 모든 것이 내게 익숙한 봄날의 동물원 풍경이었다. 여기구먼. 딱 한 가지만 영국에서 가져왔다. 런던 큐 가든 Kew Garden 곳곳에서 마주치던 공작새가 생각났다. 사람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넓은 공간에서 자유롭게 활보하던 공작은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책 속에서 아이를 이끄는 어떤 비현실적 안내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국의 능동 어린이 대공원으로 큐가든의 공작을 데리고 왔다. 책의 초입부터 잿빛 공간의 화려한 공작은 아이의 눈길을 끈다. 아이는 이 신비한 파랑을 따라가고, 날지 못하는 새는 아이러니하게도 풍선이 되어 날아간다.



책 작업이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책의 제목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동물원"이라는 제목보다 더 좋은 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이 분야의 최강 "동물원"은 앤서니 브라운의 동물원이지 않은가. "동물원의 긴 하루" 따위로 가느니 그냥 정면 승부를 하자. 앤서니 브라운과 맞장을 뜨는 거다! 누가 물어보면 앤서니 브라운의 동물원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었다고 하면 된다. 실은 앤서니 브라운에 묻어가려는 전략이었다. 출판사도 별다른 이견을 내지는 않았고, 결국 그냥 "동물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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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힌토끼 | 2021/01/11 10:05 | 100일의 글 쓰기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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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동물원팬 at 2021/01/11 23:54
브라보..짝짝짝..^^저에게 박수를^^ 제가 그럴줄 알았습니다 ~ 추리물 범인맞춘 기분인데요^^ㅎㅎ 런던동물원엔 안가봣지만. 콩크리트 느낌이 육영재단의 냄새가 났다니깐요. ㅎㅎㅎ 아 좋아라.난 저 마지막 장면이 너무 좋아요. 원숭이가 고릴라 밀어넣는 장면..웃기고...ㅎㅎㅎ원숭이 꼬리도! 원숭이 팔근육도 멋지고 ^^
Commented by 힌토끼 at 2021/01/12 09:17
박수!!!! 맞춰줘서 고맙소 ㅎ
Commented by 와! at 2021/01/12 06:10
영국 공작새를 찾아 보니 , (귀족 계급 공작이 검색 되기도!)
영국에선 애완용 공작도 있었던 적도 있고, 스페인에 있는 영국식 정원을 돌아 다니는 공작새도 있고, 유럽에서는 친근한 동물 이었구나. 생각됨. ‘동물원’은 철조망과 울타리의 모던한 선 느낌과, 종이의 컷팅된 모양위의 밝고 신나는 텃치들이
미묘한 조화를 느끼게 해 주었다는 ! 확실히 앤서니 작가님과의 차별! 되는!

거절된 저 옛날 동물원 표지가 굉장히 인상 깊은! 저것도 멋지네욤!
Commented by 힌토끼 at 2021/01/12 09:21
응. 공작이 생각보다 크거든. 그리고 양반인지 느릿느릿, 사람 겁내하는 것 도 없이 (비둘기들과 비교됨...) 우아하게....공작과 같이 걷는 기분. 괜찮았지.
Commented by 치뽈리나 at 2021/01/18 10:13
시아버지께서 동물들을 좋아하셔서 농장에서 키우셨는데요. 공작새처럼 냄새가 지독한 놈이 없다셨어요. 신은 모든 걸 주시지는 않나봐요
Commented by 힌토끼 at 2021/01/19 11:38
아하하 반전이네요. 냄새 고약한 우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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